▲ 안병권신부·칠곡 중리본당 주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문제나 잘못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이들의 문제를 들추거나 다른 이들의 잘못과 실수를 부각시킬 때가 더 많을 것입니다. 특히 사람들은 자기에게 문제가 많을수록 다른 이들의 문제를 더 크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너무 쉽게 이야기하거나 평가를 하고 더 나아가 비판이나 비난을 하는 이들을 보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바로 그 사람을 유심히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무심하게 혹은 날카롭게 하는 말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아픔을 주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처음에는 처세술로 통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언젠가 진실이 드러나게 되었을때, 사람들은 다른 이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루카복음 13,22-30 안에서 우리는 닫혀 버린 문을 두드리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들은 간절히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그러한 이들의 말에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주인을 향해 그들은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라고 말하며 주인과 자신들의 관계를 들먹입니다.

사실 이는 우리들이 흔히 선호하는 삶의 성향,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니냐?”라고 하면서 문이 열리기를 바라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이 정말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이나 행동, 나아가 그 삶의 모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지금 문만 열리기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자신들이 주님을 향해 돌을 던지려고 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향해 침을 뱉고 모욕을 퍼부었다는 것도 완전히 감추고 있습니다. 나아가 “죽여라!”라고 고함을 질렀다는 것까지도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삶으로 나아가는 이들에게 있어서 주님께로 가는 문은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열릴 문은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죄를 짓고 잘못을 하였다고 하여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참된 회개를 통해 인간적으로는 초심으로 나아가고 신앙으로는 주님께 돌아갈 수 있을 때, 우리에게 그 문은 분명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