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너무 멀고 험해서/ 오히려 바다 같지 않은/ 거기 있는지조차/ 없는지조차 모르던 섬”이라고 했던가. “가고, 보이니까 가고, 보이니까 또 가서 마침내 살만한 곳이라고…. 보라는 듯이 살아오는 땅”(조태일 시 `가거도`) 가거도에 다녀왔다.

목포까지 차로 네 시간,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에 한 번 운행하는 여객선을 타고 또 다섯 시간을 가야 발 디딜 수 있는 섬이다. 그것도 바다 날씨가 좋을 때 얘기다. 안개가 짙게 끼는 바람에 배로만 여덟 시간이 걸렸다. 새벽 2시에 서울에서 출발해 오후 4시가 돼서야 도착했다.

오직 낚시를 위한 여행, 가거도 본섬에서 멀리 떨어진 중간간여 갯바위에 내려 루어 낚시로 농어를 걸어 냈다. 밤새 갯바위에서 비박하며 셀 수도 없이 많은 볼락을 잡기도 했다. 하이라이트는 참돔 루어낚시를 문 `바다의 폭군` 부시리와의 한판 승부였다. 씨름 끝에 갑판으로 끌어올리고 보니 1미터짜리 대물이었다. 손맛 아니라 `몸맛`을 만끽했다. 농어, 방어, 부시리, 우럭, 볼락, 쏨뱅이, 돌돔 등 낚시로 잡은 각종 생선들과 해삼 내장, 자연산 전복, 흑산도 홍어까지. 가거도 밥상은 끼니마다 환상적이었다. 그렇게 잘 먹고 놀면서 며칠을 보냈다.

목요일부터 바다가 수상했다. “바다가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김춘수 시 `처용단장`). 안개는 바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도무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바다는 자꾸 음흉하고, 다 지워진 수평선을 보고 있으면 몽롱했다. 여객선이 제시간을 한참 지나서야 들어왔다. 안개가 더 자욱한 다음날엔 아예 출항 못했다. 해무에 덮인 바다를 보며 김승옥의 명문을 고쳤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가거도를 삥 둘러싸고 있었다”라고.

낚시와 진수성찬의 기쁨은 어느새 불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낚시는 재미없고 젓가락 들기도 귀찮았다. 중요한 스케줄이 있어 반드시 섬을 나가야 했다. 토요일 안개는 더 두꺼웠다. 겨울이불을 뒤집어 쓴 것처럼 숨이 막혔다. 목포를 출발한 여객선이 안개주의보가 발령되면 곧장 회항한다고 했다. 선착장으로 나가 아무 기척 없는 바다를 오래 바라보았다. 여객선이 가거도까지 온다는 소식에 환호하며 짐을 쌌지만, 배는 흑산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갔다.

일행들은 며칠 더 머무르자고 나를 설득했다. 육지로 나갈 방법이 없는데 어쩌겠냐는 것이었다. 내 `중요한 스케줄`이라는 일들을 가볍게 여겼다. 그럴 만도 했다. 그들이 보기엔 얼마든지 양해를 구하고 취소하거나 미룰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겐 그렇지 않았다. 꼭 지켜야 할 약속이고, 응답해야 할 초대였으며, 만나야 할 사람이었다. 그것들을 다 놓친 채 안개에 갇혀 하루를 허무하게 보내느니, 안개를 찢고 나가 만남의 기쁨과 소박한 일상을 붙잡기로 했다. 진도 서망항까지 가는 사선을 수소문했다. 200만원, 빚을 내서라도 배를 탈 각오였다. 때로는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다. 그게 얼마든 꼭 사야만 하는 시간이 있다. 간절함이 안개를 뒷걸음치게 했을까. 마침 경조사에 참석하는 주민들을 태우고 육지로 가는 배가 있어 거기 함께 탔다. 뱃삯으로 10만원을 냈다. 망망대해를 헤쳐 진도에 도착했다. 서울까지 가는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꽃길이었다. 안개는 확실성을 불확실성으로 바꾼다. 삶도 종종 안개 낀 바다 같다. 맑아서 멀리까지 잘 보이는 날은 드물고, 한치 앞을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 세상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우연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안개는 말해준다. 그러나 가끔 안개 속으로 몸을 던지면 저쪽에선 결코 알 수 없고 볼 수 없던 것들을 뚜렷하게 만질 수 있다고, 때로는 용기가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꿔준다고, 안개는 또 나에게 귀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