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성모병원 산부인과 김도균 주임과장의 진료실 이야기 (10)

내가 진료했던 환자가 처음으로 사망한 날을 잊지 못한다. 25년 전 의사 면허증을 간신히 인정받고 모교 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교통사고로 체내 출혈이 심한 어린아이가 응급실로 이송됐다.

의료진들의 수고에도 환자는 깨어나지 못하고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나라로 갔다. 이후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었지만, 잠시 의사의 길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나는 여러 선택을 했다. 신경외과를 지원하기도 하고, 내과를 전공하기도 하면서 내가 평생 해야 할 전문분야를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선택한 것이 산부인과였다. 아기를 내 손으로 받아내고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다.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한 개인 산부인과에서 분만 후 과다출혈로 급히 본원으로 내원한 산모를 진료하게 됐다. 환자는 이미 의식이 혼미해진 상태였고, 그 와중에도 계속 자궁을 통해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빠르고 정확한 수술이 필요했다. 개복 후 자궁을 절제하고 출혈 원인을 치료하는 동시에 수혈로 부족한 혈액을 보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혈을 지시하고 수술동의서를 받으려는데 가족들이 거부했다.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하지 않겠단 것이다. 실랑이를 벌이는 가운데 10분, 20분 시간은 자꾸 흘렀다.

처음으로 미친 듯이 화를 냈다.

“살려야 한다, 살릴 수 있는데 왜 수혈을 거부하나! 종교적인 신념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설득해보려 했다. 환자는 차츰 눈의 초점이 흐려지더니 의식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큰소리로 환자에게 소리쳤다. “수혈받지 않으면 당신 죽어요.”

환자는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고개를 저었다. 수혈을 받고 사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한 시간 뒤, 결국 환자는 사망했다.

가운을 벗어 던지고 병원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무것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시간이 흘러 산과보다는 근종, 선근증, 심부자궁내막증 질환을 복강경 수술로 치료하는 일에 집중해왔다. 어느 날 외래 진료를 기다리다 심한 통증으로 쓰러진 환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갔다.

심부자궁내막증과 선근증으로 출혈과 통증이 있어 병원을 찾은 환자는 이미 수년 전부터 자신의 질환을 잘 알고 있고 고통스러워했지만, 수술적 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환자 남편은 찾아간 병원마다 의사들이 수술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환자와 그 가족은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한다고 했다. 하지만 골반 영상 촬영결과 환자 골반은 유착이 매우 심한 상태였고, 직장에도 심부자궁내막증이 자라고 있었다. 거기다 자궁선근증과 근종으로 인한 불임을 함께 치료하고 싶어했다. 가장 난감한 질병을 가졌으면서도 동시에 수혈까지 거부한다면, 의사들이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회피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의사 초년병 시절 경험한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어떤 수술이라도 출혈은 피하고 싶었다. 다시는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를 안타깝게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수술 중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합병증과 출혈 형태를 미리 경험해 대처하기로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험 많은 의사를 찾아가 배워야 했다. 국내를 넘어 프랑스, 브라질, 일본 등 전 세계의 병원 어디든지 찾아갔다.

대부분의 날들을 수술 술기 연마에 공을 들였고 절대적인 기준을 세운 후 그 기준을 넘어서야만 다음 단계로 진행하며 혹독한 수련과정을 거쳤다.

이제 수술 중 출혈이 많아지는 상황이 닥치더라도 수혈 없이 안전하게 수술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항상 조그마한 출혈이라도 지혈하고 수술을 진행한다. 단 한 방울의 피도 헛되이 버려지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서인지 수술 결과는 좋았다. 환자의 종교적 신념은 존중받아야 하기에, 환자의 희귀한 혈액은 구할 수 없기에, 그 와중에 환자의 질병은 치료해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