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아테네(Athens) 민주정은 추첨을 통해 공직자를 선출하는 제도를 갖고 있었다. 시민들은 추첨 결과를 곧 `신의 섭리`로 받아들였다. 소크라테스는 이 제도를 통렬히 비판했다. 그는 “추첨을 통해 선원이나 건축가, 또는 플루트 연주자를 뽑지 않는다”며 공직자 선출제도를 비웃었다. 스파르타와 벌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참패한 상태에 있던 아테네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런 시대적 상황이 어리석음을 깨우는 `등에` 같은 존재였던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BC 399년 5월 시인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신(神)을 거부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며 고발했다. 소크라테스는 재판 과정에서 아테네 법관들로부터 “만약 철학을 포기하면 석방해주겠다”는 회유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음미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는 말로 거절한다. 배심원 중 과반수가 소크라테스의 유죄를 인정했다. 소크라테스는 결국 독미나리에서 채취한 독이 담긴 독배를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여의도가 `귀머거리 정치`의 늪에 빠졌다. 정부여당은 여론 지지율 마약에 휘둘려 `편견`을 `확신`이라고 우기기 시작했고, 야권은 제 역할을 찾지 못해 허둥대고 있다. 국민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재야세력들이 서둘러 대선 청구서를 들이밀며 길거리로 나섰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당장 지키라며 깃발을 흔들어대고, 청와대 앞에는 `의사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의 억센 주장들이 넘쳐난다.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수상한 잡음들이 전통적인 `한미동맹`의 미래에 암운을 던지고 있다. 반미 세력들의 준동을 의심케 하는 현상마저 얼비친다. `사드배치 결사반대` 구호를 외치는 데모대가 미국대사관을 포위하는 시위 이벤트까지 벌였다. 미국으로 날아가 `문재인 대통령의 뜻`도 아닌 이상한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문정인 대통령외교안보특보는 개선장군처럼 큰소리를 치며 돌아왔다.

문정인을 두둔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아무도 하지 않는 말을 용기 있게 했다”고 치켜세웠고, 우상호 전 원내대표는 “문 특보 발언은 북한용”이라며 역성을 들었다.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는 “문 특보의 워싱턴 발언은 옳았다”고 종래의 비판을 뒤집었다. 청와대는 분명히 문 특보의 발언이 한미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엄중 경고했다고 밝혔었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가.

정부여당은 역할을 분담하여 한쪽으로는 애드벌룬 띄워놓고, 다른 쪽에서 오리발 내미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법을 구사하기 시작한 게 분명하다. 혹여 높은 지지율에 취한 나머지 귀를 아예 닫고 가겠다는 신호는 아닐까 우려스럽다. 민심의 소리에 `귀머거리` 행세를 하는 것은 비단 정부여당 뿐이 아니다. 정권의 처참한 실패로 문패를 바꿔 단 자유한국당 역시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은 아무래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만년 지지층에 너무 오래 젖어 있어서 오감이 퇴행한 듯하다. 이 혹독한 정치적 빙하기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국회의원 철밥통 임기를 믿고 민심의 바다에서 아예 촉수를 거둬들인 모양새다. 이렇게 반성도 통회도 없는 낯 두꺼운 행태로 권력놀음에 빠져서 당권을 노린 막말전쟁이나 벌이고 있는 모습이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음미되는 삶`을 되새겨본다. `귀머거리 정치`가 바라는 것은 필경 `벙어리 국민`일 것이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묻고 또 묻는 방식으로 세상을 깨우쳤던 소크라테스는 결코 `벙어리 국민`을 원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희대의 현자를 독살한 아테네의 귀머거리들은 머지 않아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귀 닫고 궤변만을 일삼는 이 나라 정치가들은 대체 어떤 나라를 그리고 있는 것일까. 이 답답하고 유치한 `귀머거리 정치`의 늪에서 헤어날 길은 정녕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