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이것부터 혁신하자

▲ 경북신도청 전경.
▲ 경북신도청 전경.

대구경북이 앞장서 탄생시킨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2017년 지역민의 새해 다짐을 `혁신`, 곧 변화의 호흡으로 시작하도록 했다. 그리고 숨가쁜 `장미대선`끝에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체제의 출범과 그 이후 현실화되고 있는 차별의 조짐들은 대구경북에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 솟아나는 지역 전체의 성찰이라는 꽃은 미래를 준비하는데 또 다른 기회이기도 하다. 본지는 혁신을 외치는 막연한 당위성 주장과 기대에서 나아가 정치, 사회, 경제 등 부문별 전문가를 만나 구체적인 위기 진단과 대안을 들어봤다.
 

▲ 김진홍<br /><br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포항철강산업, 성장패러다임 바꿔야”

■ 경제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생활·의료용품 등 제품 생산
로봇 비롯 신산업 개척 필요

-경제 위기 속 가장 큰 화두로 혁신이 주목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대구경북의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혁신이 없어서인가.

△혁신(innovation)의 전제는 경쟁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 바로 혁신이다.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한 과정에서 혁신으로 여겨지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성과가 미미하면 참신한 시도 정도로만 평가받는데 그칠 수 있다. 사후에 그 성과를 인정받아야 혁신이라 부를 수 있다. 대구경북 경제의 어려움이 혁신의 부족에 있다는 판단은 입장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는 그동안 많이 혁신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포항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평균 0%에 그치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제분야에 혁신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원인을 대구·경북지역의 혁신 역량 부족으로 보는 시선도 있는데.

△대구경북지역 전체는 물론 포항시만 놓고 봤을 때에도 혁신 의지나 혁신을 위한 기본적인 연구개발 인프라, 혁신에 필요한 기술역량은 차고 넘친다. 사실 그 동안은 비경쟁체제로도 지역의 성장과 발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주변 여건이 고착화된 가운데 혁신을 향한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경제 위기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경제 외의 여러 주변 여건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을 거론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나 철학 분야에서는 오랜 기간 물이 고이고 그 깊이가 깊어질수록 사유와 지식이 축적돼 대문호가 태어나거나 새로운 사상이 형성된다고 본다. 주변 여건의 고착화가 오히려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치열한 경쟁이 수반되는 경제 분야에서는 주변 여건이 치명적인 악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경제활동 혁신을 위해서는 지역의 모든 경제주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 지역경제 사안을 단연 경제주체만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포항경제의 주력인 철강산업 분야에서 혁신 가능한 방안이 있다면.

△철강산업의 성장패러다임만 바꿔도 포항경제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포항은 가장 기초소재인 철강을 전국에 공급하며 대외 수출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방식이 통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그동안 손대지 않았던 철강 관련 최종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엄청난 설비투자가 동반되는 자동차, 선박 등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포항의 철강금속 소재를 활용해 주방용 냄비, 프라이팬, 부엌칼과 과도와 같은 소비용품을 생산할 수 있다. 메스 등 수술용 금속기구로 의료용품을 만들거나 손톱깎이, 등산용 물통처럼 생활용품 최종생산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최종제품 생산을 위한 지역 기업과의 협조와 참여도 기대할 수 있다. 단일 기업이 어렵다면 수출용 군수용품, 지역 로봇산업과 연계된 수중잠수정 등 다양한 부분에서 여러 기업이 새로운 시장개척을 위해 신사업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더불어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철강 소재의 직접 수요처를 지역 내에서 발굴하는 것, 이것도 일종의 혁신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혁신 방안을 제안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경북동해안 지역의 생활권 경제가 유기적으로 융복합돼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혁신을 위한 인프라와 기술역량 등이 반드시 한 지역에 한꺼번에 모두 갖춰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포항만 놓고 봤을 때에도 인구, 행정, 정치 등 여러 면에서 혁신을 위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지역 전체를 보고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최적의 혁신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기초자치단체 간 협력을 통해 지역 상생을 위한 전략을 추구한다면 경제를 넘어 정책분야의 또 다른 혁신이 될 수 있다.
 

▲ 윤대식<br /><br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
▲ 윤대식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

“배타적 지역주의·연고주의 타파해야”

■ 사회

윤대식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

젊은층 일자리창출 힘쓰고
관문공항을 새 성장거점으로

-대구·경북의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진단하신다면.

△지금까지 특히 대구경북은 지연·학연·혈연을 중심으로 강한 결속력을 유지하면서 다른 지역 사람과 외국인들에게는 강한 배타성을 보여 왔고, 이 연고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시스템 작동의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해 왔다. `우리끼리 잘해 보자!`는 논리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최고의 선(善)으로, 때로는 가장 중요한 행동윤리로 자리 잡아 왔다. 근·현대기를 거치면서 대구·경북은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들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대구·경북도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언제까지 우리끼리만 통하는 논리로 남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대구·경북의 발전을 가로막는 고질적 장애요소는.

△대구·경북도 기회의 땅으로 만드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대구·경북의 고급인력 유출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지역의 고등학교 졸업생 가운데 우수학생 대부분이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지역대학 졸업생들마저 지방에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대부분 서울로 가길 희망한다. 지역의 능력 있는 엘리트들이 수도권과 더 넓은 세계로 나가서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긴 하지만 그들이 대구·경북은 기회의 땅이 아니라며 우리 지역을 떠나는 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그것도 창조적 엘리트들이 그들의 나라로 돌아와 이스라엘의 발전을 위해 몸바쳐 일하는 것처럼 대구·경북을 떠났던 출향민이 돌아오도록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지역의 산악지리적 특성이 역내 협력과 공동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라는 주장과 함께 교통인프라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는데.

△지역발전정책에서 산업정책도 중요하지만,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정책이 매우 중요한데 공정한 지역 간 경쟁을 위한 기본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결국 관문공항을 지역 공동발전의 구심점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광역경제권별 사회간접자본(SOC)의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지역발전을 하는데 필수적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사회간접자본(SOC)은 공항, 항만, 광역철도, 도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국제공항은 지방의 광역경제권 활성화를 위해 필수적인 시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재 대구·경북이 함께 추진하고 있는 관문공항은 단순히 항공여객의 관문 혹은 통로(Gate Way)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지역발전을 위한 새로운 성장거점(Growth Pole)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공항 건설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공항 주변에 공항도시(Air City) 건설을 위한 청사진과 주변지역 개발계획을 수립해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공항철도 확충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해 지역발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 대구시청사 전경.
▲ 대구시청사 전경.

-대구·경북의 미래를 위해 어떤 부문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지역사회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공리주의에 입각한 판단과 의사결정, 이것이 가능토록 조직화한 시스템의 구축만이 글로벌 시대 우리 지역의 미래를 밝혀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합리주의의 정착, 배타적 지역주의와 연고주의의 타파가 대구·경북의 미래를 위한 이정표가 돼야 할 것이다. 쇠퇴일로에 있는 지역경제와 지역문화를 부흥시키고, 지방대학이 인재를 유치하려면 지방정부, 기업, 대학, 연구기관, 시민단체가 협력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지역사회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갖는 가장 큰 경쟁력은 인재 확보와 이들을 효율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게 하는 지역사회시스템의 구축에서부터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로벌 경제에 적합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만 사람과 자본이 대구경북을 향할 것이다.
 

▲ 장우영<br /><br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역민들 선거에서 새 이정표 세워야”

■ 정치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TK예외주의 실체·허구 갈림길
중도·진보정당도 이젠 달라져야

-탄핵정국을 거친 한국과 대구·경북 정치의 가장 큰 변화는.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조기 대선까지의 반년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로 이행한 후 가장 역동적인 시간이다. 이 초유의 집단 경험은 후세에도 두고두고 회자할 것이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교본으로 한국 정치사에 길이 전승될 전망이다. 개인적으로 사뭇 대조되는 결과에 놀라움을 느꼈다. 우선 `정치는 나쁜 것`이라는 혐오를 국민 스스로 걷어내고 자신이 정치의 주역이라는 점을 절감했다는 점이다. 반면, 국정을 농단한 권력이 파면됐지만, 동반 책임을 져야 할 과거 집권당은 여전히 위세를 떨쳐 두 현상의 간극이 촛불의 한계인 셈이 됐다. 그 간극의 중심에는 대구·경북 유권자의 선택이 똬리를 틀고 있다.

-조기 대선에서 대구·경북의 투표 성향을 평가해 달라.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지만, 소속당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선거의 큰 힘이다. 제19대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예상을 뒤엎고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은 탄핵반대 여론과 거의 일치했다. 대구·경북은 전국 평균 득표율의 두 배에 가까운 표를 홍 후보에게 몰아주었다. 물론 이 표심에는 홍 후보에 대한 지지와 문재인 후보에 대한 반대가 뒤섞여 있지만, 대구·경북은 민심과 동떨어진 예외 지역으로 평가 절하됐다.

당시 집권당을 뛰쳐나온 바른정당을 배신의 무리로 지탄하거나 친박계가 온존하는 토양을 제공하는 `대구·경북 예외주의`에 전국 민심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전임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인지상정으로 변론할 수도 있겠으나, 전근대적 연고주의로 세상의 변화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구·경북 예외주의`는 명운의 갈림길에 서 있다. 여전히 철벽의 아성을 쌓게 될지 변혁의 대로에 동참할지가 그것이다.

-대구·경북의 정치 혁신이 가능하겠는가.

△앞서 말한 `대구·경북 예외주의`는 온전히 적절한 개념은 아니라고 본다. 지난 촛불집회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집권당 당사의 간판이 떨어져 나간 곳이 대구이고 설문조사 결과 국정농단에 가장 큰 분노를 쏟아낸 지역도 대구였다. 해방정국의 10월 항쟁 이래 대구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참가한 시위도 촛불집회로 일컬어진다.

지난 2014년 대구시장 선거의 결과는 이러한 기현상의 전조로 분석된다. 혈혈단신으로 뛰어든 민주당 후보에게 대구 민심은 40%가 넘는 득표율로 화답했다. 이어 2년 뒤 총선에서 보수의 심장부인 수성갑 유권자는 김부겸 후보에게 승전의 꽃다발을 안겼고 대구 북구을에서 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홍의락 후보를 당선시켰다.

제19대 대선에서는 중도·진보 진영의 세 후보가 전례 없는 40%대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것이 대구·경북 예외주의가 설명하지 못하는 대구·경북의 의미심장한 변화다.

-지역 정치와 유권자가 바꿔야 할 과제는.

△`대구·경북 예외주의`가 생명력을 가진 현상인지 여부는 앞으로 지역 유권자의 선택에 달렸다. 내년 지방선거와 그 이후의 21대 총선은 `대구·경북 예외주의`의 해체 또는 지속을 가늠하는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유권자의 선택만으로 책임을 돌리는 것은 정치적 도의가 아니다. 그동안 대구·경북의 중도·진보 정당들이 보수 정당 이상으로 유권자에게 열과 성을 다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항일운동을 하듯이 유권자와 거리 두기와 이념 전선 긋기를 돌이켜 봐야할 시점이며 `모든 것이 내 탓이오`라고 고백하고, 유권자의 손을 맞잡을 때 정치적 책임윤리가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대구·경북의 민심은 이미 여러 번 변화의 경종을 울렸고 대구·경북 예외주의는 실체와 허구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된다. 물론 그 귀결은 정치적 책임윤리와 유권자의 응답에 달렸다.

/김영태·심상선·김민정기자

    김영태·심상선·김민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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