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토론에 약하다는 것을 이야기할라 치면 늘 우리가 받아온 `교육`을 탓하곤 한다. 주입식 교육으로 선생은 말하고 학생은 듣기만 하는 교육방식에 문제가 있다.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학생은 그저 읽고 들어 담기만 할 뿐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인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은 바꾸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적 가치를 구현함에 있어 토론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절감한다면 우리 교육은 어째서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라도 우리는 교육의 현장에서 이를 어떻게 바꾸어 갈 것인지 먼저 고민하여야 한다.
둘째, 토론에는 늘 상대가 있다. 내 생각이 옳은 만큼 상대도 분명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진정성으로 나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인정하는 데에 늘 인색하지 않은가. 상대의 생각을 잘 새겨 타당한 경우에는 나의 생각도 바꿀 준비와 용기가 있어야 할 터이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음을 전제하고 하는 토론은 이미 토론이 아닌 것이다. 서로 조절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토론은 시작부터 어려운 것이다. 상대의 의견에 `비판`적인 태도로 견주어 보는 일이 분명 필요하지만, 옳은 생각에는 손을 들어 주어 내 생각을 바꾸어 가는 `타협`의 태도야말로 토론에 없어서는 안 될 덕목인 것이다. 우리는 이를 변절이나 굴복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반성할 부분인 것이다.
셋째, 토론의 생각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안인 것이다. 우리는 종종 사람과 사안을 혼동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특정인사 또는 특정집단이 가지고 오는 생각거리는 그 내용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불문하고 모두 틀렸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 사안에 대한 대화와 협상을 어렵게만 하는 편견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다루어야 할 주제에 관하여 상대도 나름 해결방안을 가지고 나아오는 것이므로, 상대는 그 주제에 관한 한 사실상 나의 파트너인 셈이다. 사람을 이겨야 할 적수로 볼 것이 아니라, 사안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삼아 열심히 마음을 모아가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사람과 사안을 잘 구분하여 사람과의 관계는 긍정적으로 살려내면서 사안에는 분석적이면서 비판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 나라를 살려내기 위하여 우리는 서로를 향해 윽박지르며 고함칠 것이 아니라, 시민의 건전한 토론을 더욱 키워가야 한다.` 미국 언론인 한 사람의 고백이라고 한다. 우리가 듣기에 저들 나라에는 토론문화가 자리잡혀 있다고 했다. 그런 곳에서 아직 저런 고백이 있다고 하면 진정한 토론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다 나은 토론과 성숙한 민주주의를 향하여 우리는 누구나 `공사중`인 셈이다. 이제 그 지향점을 분명히 보게 된 이상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더는 후퇴하지 않도록 다시는 돌아가지 않도록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하며 나라의 리더쉽은 각성하여야 한다. 서로 물고 뜯을 일이 아니라, 나라를 살려야 한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