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
▲ 배개화 단국대 교수

필자는 요즘 만주국 시대에 창작된 문학 작품에 대한 자료를 읽고 있다. 만주국은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존재했던 국가로서 일본이 중국 동북지방, 즉 만주 지역에 세운 소위 위성 국가이다. 관련 자료를 보다가 사회계층의 형성과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을 보게 되었다.

만주국은 오족협화와 왕도정치를 표방하면서 시작되었다. 오족협화는 일본, 조선, 만주, 몽고, 한족 등 오족이 서로 협력하면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만주국 내에서 이 다섯 민족의 지위는 서로 평등한 것으로 상상되었다.

하지만, 오족협화의 건국이념과는 달리 실제로는 민족적인 차별이 존재했다. 일본인이 가장 우위에 있었으며, 조선인이 일본인 다음으로 다른 민족들에 비해서 우위에 있었다. 이것은 각 민족에게 주어지는 봉급과 식량배급 등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일본인이 100원을 받을 때, 조선인은 40원대 그리고 만·몽족은 20원대의 봉급을 받았고, 식량배급에서도 일본인은 백미, 조선인은 백미 반, 수수 반, 그리고 중국인은 수수만을 받았다.

야마무로 신이치는 `키메라:만주국의 초상`이라는 책에서 만주국 건국 이후 대만에서 피지배자였던 사람들이 만주국에서 지배자의 위치로 옮겨간다고 주장한다. 대만에서는 낮은 월급밖에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주인과 똑같이 중국어를 쓴다는 이유 때문에 관동주나 만주국에서 아주 높은 월급을 받게 된다. 높은 월급을 받게 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신분상승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인이라는 아랫사람이 생겼기 때문에 윗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만주국에서 대만인과 유사한 상황이 조선인에게도 발생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인은 피지배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만주에서는 일본인 다음으로 우월한 지위를 갖게 되었다. 당시 일본은 조선인이 일본인에 비해 중국에 대한 이해가 높고, 일본의 정신을 연마 정진하여 일본인을 능가하는 인재가 적지 않기 때문에 일본인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 조선인을 일본과 중국 민족연합의 중개자로 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런 필요 때문에 조선인 역시 만주국 사회에서 다른 중국 민족들보다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자신들 역시 차별받았지만 더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계층에 있는 사람, 적극적일 경우 지배층의 말단에 위치할 수 있었다.

아랫사람을 만듦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필자는 아직도 건설 중인 신도시의 LH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런데 입주자 커뮤니티의 온라인 게시판에 `민영아파트 엄마들이 LH 아파트와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의 아이와 자기 아이를 같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보내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고 성토하는 글이 올라온다.

신도시의 민간아파트와 LH 아파트의 분양가 차이는 평당 100만원 이하이다. 이삼천만원에 소위 신분이 낮은 사람이 되어 신분 높은 사람들로부터 소위 물을 흐리는 상종하기 싫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아랫사람을 만들어서 윗사람이 되는 전략은 소위 취업 시장에서도 늘 일어나는 일이다. 1998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를 명분으로 생겨난 파견 근무나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방식에 다른 근로자들이 쉽게 타협하고 안주하는 것, 오히려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에 대해서 우월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는 아랫사람을 만듦으로써 윗사람이 되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자기보다 더 적은 봉급을 받고 복지혜택이 적은 것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사회 전체의 건강성을 해치는 데도 문제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 결국은 자신의 삶마저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른다는 성찰과 반성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