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재 휘

산맥 같았던 것들이 밀리고 밀리면

동쪽 변방의 호숫가 어느 오래된 나무

지나가는 물새가 잠시 해를 가리는 동안

새 혓바닥만한 버들잎이 한 몸 떨어진다

한순간 숨을 멈추는 오전이었다

천지간에 해일처럼 살다가

막 지워진 파문에 꽂혀 끝없이

죽음을 타전하는 작은 잎

투명한 경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면

호수에 그늘을 드리운 버드나무들의

반짝이는 오늘은 얼마나 평화스러운가

잠시 흔들린 수초들의 그림자가 다시 꼿꼿해지고

수면은 명경지수(明鏡止水)로 봄날이 가는데

흐린 물바닥에선 지붕이 날아가고

전신주가 뿌리째 뽑히고

더 깊은 물 속에선 거대한 별똥이

휙 제가 지나온 길을 손가락질하며

사라졌다

강릉 경포호수의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풍경을 보여주면서 호수의 표면 뿐만 아니라 호수 속의 세계에 대한 깊은 사념을 그려내고 있다. 명경지수(明鏡止水)의 호수, 그 속에는 흐리고 갑갑하고 썩고 사라지는, 그래서 새로운 탄생이 이뤄지는 오묘한 세계를 시인은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전부가 아닌 것이다. 잔잔하고 맑은 호수면에서 깊은 호수 속을 탐색하는 시인의 눈을 따라가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