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찬<br /><br />김천대 교수
▲ 김동찬 김천대 교수

존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이다. 실질적으로 지금의 감리교를 설립한 사람이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한 존 웨슬리는 옥스퍼드 링컨 컬리지의 교수가 됐으며, 1728년에는 장로 목사가 됐다. 웨슬리의 선교 사역은 교회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사역이었다. 브리튼 섬 전역과 아일랜드를 다니면서 웨슬리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소규모 그룹을 조직해 소그룹 안에서 신자들이 훈련 받고 양육 받을 수 있게끔 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웨슬리가 평신도 설교자를 세워 자신처럼 나라 곳곳을 다니며 전도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웨슬리의 지도 아래 감리교도들은 감옥 개혁과 노예 해방 등 당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이끌고 개혁하였다. 웨슬리는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해 주장하였고, 그리스도인 내면에 하나님의 사랑이 깊게 자리한다면 이를 바깥으로 표출해 사회적 성화를 이뤄야 한다고 역설했다.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경험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웨슬리 사후 감리교는 영국 국교회로부터 독립해 자체적인 교단을 형성했으며, 감리교로부터 성결교, 오순절 운동, 구세군 등이 나타났다. 즉 당시 영국 사회와 교회사에 끼친 웨슬리의 영향은 지대했다.

존 웨슬리는 야외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설교했다. 그러자 변화와 부흥이 일어났다. 이 모습을 기존 영국 국교회가 좋아할 리 없었다. 자신들에게서 성도들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웨슬리를 공격했다. 웨슬리의 선교를 방해했다. 교회 제도권 밖으로 쫓아냈다. 뿐만 아니라 나쁜 소문을 만들었다. 엉뚱한 죄목을 붙였다. 심지어 이단이라고 했다. 웨슬리를 반대하는 책과 전단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돌렸다. 웨슬리는 수십 번 폭도에게 죽을 뻔했다. 영국 국교회에서 왜 웨슬리를 공격했겠나? 웨슬리의 메시지는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웨슬리의 살아 숨쉬는 역동적 생명력에 영혼이 죽어있던 그들이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결코 낙담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계속 흘러넘치게 했다. 나눠 줬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자들의 허물을 가려줬다.

구약성경 창세기의 놀라운 스토리를 장식하는 노아 시대의 홍수 사건. 노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로부터 살아남게 된다. 대홍수 사건 이후 꽤 많은 시간이 흘러 노아가 경작하는 땅에 포도나무가 자랐고, 노아는 이를 잘 발효해 포도주를 만들었다. 포도나무는 풍요와 복의 상징이다. 반면 포도주에 취해 추태를 부리는 노아의 모습은 타락의 모습이다.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모습에서 비참한 죽음에서 구원된 넘치는 복의 모습과 술에 취해 흐트러진 영적 타락의 긴장 관계를 볼 수 있다. 노아는 썩어 버렸다. 썩지 말아야 한다. 생명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 웨슬리처럼 모진 풍파와 위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근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명에 집중하지 않으면, 나태해져서 근육이 굳어버린다. 사명에 집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자기 스스로를 희생과 섬김의 자리로 나가게 해야 한다. 자신을 통하여 건전한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흘러넘침`은 논리상 `넘침`과 `흐름`으로 나눌 수 있다. 무언가가 충분히 넘치면, 흐를 수 있다. 흐름이 있어야 싱싱해지고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생명력이 싱싱하고 풍요롭게 흘러 넘치면 힘이 생긴다. 그 힘을 어떻게 써야하나?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고 상처를 치유하는데 써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 부끄러움을 `가죽옷`으로 덮어 줬다. 허물을 덮어주는 것은 `하나님의 행위`다. 힘은 양면성이 있다. 덮을 수도 있고, 폭로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힘이 있는가? 그 힘을 타인의 허물을 덮어 주는데 쓰도록 하자. 그것이 생명력이고 그것이 기적의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