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19일 0시를 기해 영구 정지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탈 석탄화력발전(發電) 방향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논란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국내 원전 25기 중 12기를 보유하고 있고, 30년 설계수명이 종료되는 원전 12기 중 6기를 갖고 있는 경북도는 이 같은 새 정부의 기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역민들이 열망하고 있는 지진과 원전 안전대책 강화, 동해안 에너지 클러스터가 이뤄질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연계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취임 1주일 만에 30년 넘은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임기 내 폐기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의 에너지 공약은 원전·화력 대신 LNG 발전과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높인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현재 2%대인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리고 40년 뒤에는 `원전 제로`국가를 만들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 로드맵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원전발전의 단계적 폐기방안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주문했다. 탈 원전을 선언한 독일·스위스처럼 궁극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기는 하다.

문제는 안전하고 환경친화적이면서 가격도 싼 에너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올 들어 ㎾/h당 발전단가를 보면 LNG발전(88.82원)이 원전(5.69원)의 15.6배에 달한다. 석탄(46.59원)보다도 1.9배 비싸다. 원전과 석탄이 전체 전력공급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달 초 한국원자력학회와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등에 소속된 교수 200여 명은 “문 대통령의 원전 공약 이행 과정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여론을 수렴해 에너지정책을 신중하게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정부는 정권초기임에도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에너지분야 전문가들의 주장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국가의 중장기 대계(大計)인 에너지정책을 새 정부가 출범 한 달도 안 돼 화급하게 밀어붙일 일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안전·환경 못지않게 비용과 경제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원전·화력 감축이 초래할 전기료 인상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히고 국민의 동의를 얻는 게 필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등 원전·화력 건설 중단에 따른 매몰비용이 수조 원에 이른다. 애써 키워온 원전 수출역량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지진으로 인한 원전 재앙을 겪은 일본이 원전을 재가동하는 등 추세변화를 참고할 필요도 있다. 또한 지금은 여유가 있다 해도 전력수급에 한시라도 차질이 있어선 안 된다. `탈 원전·탈 석탄발전`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국가 에너지원의 70%를 차지하는 원전과 석탄화력을 단시간에 바꿀 수는 없다. 우선순위를 가려 차근차근 준비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