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새 정부가 결국 국회문턱을 넘지 못한 후보자를 임명 강행하는 것으로 장관급 첫 인사를 단행했다는 것은 출범초기부터 `협치`를 이뤄내겠다는 장담을 꺾은 것으로 읽혀 걸쩍지근하다. 문제는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이 내비치고 있는 청문회 원칙 변경 의지다. 무엇보다도 `아전인수식` 변경을 도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걱정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상조 위원장에게 국회 인사청문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인사청문회 과정이 자질과 능력이나 정책적인 지향을 검증하기보다 흠집내기식 이런 식으로 하니까 정말 좋은 분들이 특별한 흠결이 없어도 인사청문회과정이 싫다, 그런 이유 때문에 고사한 분들이 굉장히 많다”면서 “인사청문회가 끝나고 나면 인사청문회 개선 방향도 국회에서 논의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서 “우리 스스로 높은 기준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반대를 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어서 안타깝다”며 “그런 것 때문에 더 폭넓은 인사에 장애가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 동안 낮고 겸손한 행보로 기대치를 높여왔던 흐름에 비쳐보면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맥 빠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왔던 대통령들과 다름없이 `네 탓` 타령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슬며시 들기도 한다.

문 대통령이 김상조 위원장 임명을 강행한 것은 여론을 업고 야당의 반대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읽히고 있다. `발목잡기` 의지를 내려놓을 기미가 없는 야당에 맞서 문 대통령은 점점 더 `마이웨이` 행태를 보이게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든다. 집권 이후 `특별지시` 형태로 주요 정책들을 펼치고 있는 방식에 대해서 벌써부터 `불통이네`, `제왕적이네` 하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판이다.

과거 새누리당이 여당이던 시절 민주당은 청문회 제도개선안에 대해 절대로 안 된다며 결사반대했던 적이 있다. 새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청문회 제도개선안이 정부여당이 걸려든 자충수를 해소해줄 것인지 주목된다. 염려스러운 것은 이런 저런 제척사유를 만들어 그 동안 정착돼온 인사청문회의 순기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는 수단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당장 쓰기 어렵다고 원칙을 마구 구부리고 부러뜨리는 것은 치명적인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국회로 하여금 스스로 개선책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높은 지지율에 취해 또 다시 `무소불위`의 관성에 휘둘리는 정권이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협치`를 최우선 덕목으로 삼겠다던 `초심`을 부디 잃지 말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