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적만 해도 동네에 걸인들이 많았고, 때가 되면 동냥하러 오는 그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쯤 가끔씩 식사 때가 되면 동냥을 하러 오는 걸인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그 사람에게 식사를 차려 주시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남의 집 한 곁에서 셋방살이 하는 우리도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밥 한 끼 대접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비단 우리 어머니만이 아니라 그 무렵 어렵게 살던 모든 서민들이 또한 그렇게 하였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굶고 있는 그들에게 밥 한 끼 챙겨주는 것이 거창한 나눔이니, 사랑의 실천이니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인정상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시대를 살던 대부분의 서민들이 루카복음 10, 25~37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진 오늘날 오히려 어머니 세대 때 같은 사마리아인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때보다 정이 없어서라든지 사랑을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모두가 이런저런 것들을 염두에 두며 망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시간이 없어서`, 혹은 `돕는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볼지` 등의 망설임이 우리가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루카복음 10, 25~37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보고 느낀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망설이지 말고 그렇게 살아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사랑의 실천은 입으로만 해서도 안 되고, 가슴의 느낌으로 끝나서도 안되며, 실천하는데 망설여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구체적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이 그러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용기를 주님께 청하며, 우리 모두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