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일신부·용계본당 주임
제가 어릴 적만 해도 동네에 걸인들이 많았고, 때가 되면 동냥하러 오는 그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쯤 가끔씩 식사 때가 되면 동냥을 하러 오는 걸인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그 사람에게 식사를 차려 주시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남의 집 한 곁에서 셋방살이 하는 우리도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밥 한 끼 대접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비단 우리 어머니만이 아니라 그 무렵 어렵게 살던 모든 서민들이 또한 그렇게 하였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굶고 있는 그들에게 밥 한 끼 챙겨주는 것이 거창한 나눔이니, 사랑의 실천이니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인정상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시대를 살던 대부분의 서민들이 루카복음 10, 25~37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진 오늘날 오히려 어머니 세대 때 같은 사마리아인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때보다 정이 없어서라든지 사랑을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모두가 이런저런 것들을 염두에 두며 망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시간이 없어서`, 혹은 `돕는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볼지` 등의 망설임이 우리가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루카복음 10, 25~37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보고 느낀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망설이지 말고 그렇게 살아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사랑의 실천은 입으로만 해서도 안 되고, 가슴의 느낌으로 끝나서도 안되며, 실천하는데 망설여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구체적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이 그러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용기를 주님께 청하며, 우리 모두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