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성모병원 산부인과 김도균 주임과장의 진료실 이야기 (9)

월요일 아침은 외래 진료로 시작한다. 주로 최근 수술을 마친 입원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 검사부터 한다.

제주도에서 온 한 환자는 직장 난소 자궁 후벽, 방광까지 자궁내막증 병변이 침범한 데다 이미 두 번의 수술로 장 복벽과 자궁 유착이 심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회복 단계에 접어들었다. 복강경 수술로 골반 내 모든 유착과 심부 자궁내막증병변을 제거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마무리하는 과정은 수술을 진행하는 집도의에겐 큰 용기와 인내가 있어야 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수술 전후 3~4일간 금식이 매우 힘들었겠지만, 골반 내 장기 특히 직장의 회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곧이어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진료실로 들어온 한 환자를 만났다. 다른 지역에서 이른 아침 KTX를 타고 왔다고 했다. 피곤함이 심해지면 눈 밑이 검게 변하는 것을 경험하는데 이 환자가 그랬다. 심한 생리통과 요통, 만성적인 피로, 생리 과다로 인해 일상적인 생활이 안 된다고 했다.

진료 결과 선근증과 심부 자궁내막증이 동반된 상태로 환자는 자궁내막증과 선근증병변을 모두 제거하면서도 자궁 보존을 원했다.

복강경 수술을 하는 의사에게 심부 자궁내막증과 선근증이 동반된 경우는 암 수술보다도 더 힘든 수술이라 할 수 있다. 진료를 마치고 수술날짜를 잡았다.

마지막 진료는 복강경 하 난소 자궁내막종 수술 후에도 생리통, 성교통, 요통, 양측 다리 저림을 호소하던 환자였다.

한 달 전 재수술을 맡아 성공적으로 마쳤다. 자궁과 직장, 요관, 혈관이 있는 골반 깊숙한 곳의 병변을 완전히 제거했다.

환자 표정은 매우 밝았다. 10년 이상 겪은 통증이 사라진 것이 매우 기쁘고 행복하다고 했다.

위에서 언급한 세 명의 환자는 종양 제거가 목적이 아닌 통증 치료를 위해 내원한 경우다.

한 마디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던 환자들이다.

암이 아닌 이상 생리통, 만성 골반통, 요통, 다리 저림, 성교통, 배변통 등과 같은 통증은 `견디는 것`이 한국 여성들에겐 익숙하다.

하지만 약물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통증을 경험하게 되면 여러 병원을 전전하게 되고 골반염, 장염, 방광염, 척추 디스크 질환처럼 잘못된 진단을 받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제대로 된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7년이 걸린다고 한다. 한국도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난소에 생리혈이 고여 마치 종양처럼 보이는 자궁내막종이 있지 않은 한 초음파나 CT로 진단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난소자궁 내막종이 없는 골반 심부 자궁내막증 환자들은 제대로 된 진단이나 치료 안내를 받기가 어렵다. 환자 통증을 골반염 또는 단순한 생리통으로 간주해 항생제나 진통제 호르몬 치료만 하는 산부인과 의사들도 있다.

사실 자궁내막증을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재발률이 가장 낮은 적절하고 정확한 치료를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나 역시 이 문제를 다루는 학회나 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국내외 전문가들을 찾아내야 했고, 찾아가야 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내가 해온 태도를 버려야 했다. 그것은 고통스러웠다.

여기다 골반 장기인 직장, 대장, 요관, 방광의 수술적 처치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심부 자궁내막증은 해결되지 않는 난치성 질환이다.

통증을 호소하는 수많은 환자 중에 심부자궁내막증 환자를 감별 진단하고 골반 깊숙이 위치한 병변을 완전히 제거하기까지,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배움에 투자하고 이 과정에 방해되는 자존심과 두려움을 버리고자 매 순간 노력했다.

열정과 인내는 함께 오래가야 한다. 그래야 환자들이 괴롭고 힘든 길을 둘러 가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