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도 현

뒷집 조성오 할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셨다

감나무 두 그루 딸린 빈집만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살아서 눈 어두운 동네 노인들 편지 읽어주고 먼저 떠난 이들 묏자리도 더러 봐주고 추석 가까워지면 동네 초입의 풀 환하게 베고 물꼬싸움 나면 양쪽 불러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심판 봐주던

이 동네의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슬프도록 아문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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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비탈길을 힘겹게 밟고 올라가던

느린 발소리와 끙, 하던 안간힘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그만

길도 돌아가시고 말았다

시 속에 나오는 조성오 할아버지는 동네의 `길`이었다. 동네 노인들에게 눈이 되고 손발이 되어 주며 그들을 여러 가지 일들로 이어주는 길이었다. 평생 남들을 위한 배려와 섬김의 정신으로 아름다운 삶의 자국을 남기고 죽은 뒤, 그가 오르내리던 비탈길에도 이제는 풀이 무성하고 길이 지워져 버린 현실을 아파하는 시인을 본다. 조성오 할아버지의 느리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동행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