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찬<br /><br />김천대 교수
▲ 김동찬 김천대 교수

한일 월드컵 열기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2002년 6월 29일, 갑작스런 북한군의 도발로 벌어진 제2연평해전에서 6명의 국군이 희생되었다.

북한군의 극악 무도한 도발에 무참하게 목숨을 잃은 대한민국의 여섯 용사 중 조타장 고(故)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씨는 영화 `연평해전` 유족 시사회가 끝난 뒤,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영화를 보고 너무 많이 울어서 정신이 없었어요. 남편이 실종된 뒤, 41일 만에 시신 인양을 했는데 영화에 그 장면이 나와서 그 당시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남편의 시신을 찾을 때까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기분이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픕니다.” 한상국 중사가 목숨을 잃었던 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은 국군장병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정부의 홀대와 무심함에 나라를 원망하며 쓸쓸히 캐나다로 떠났었다. 2008년 돌아온 김씨는 개명까지 했다.

해마다 6월6일은 현충일로 기념한다. 현충일은 순국선열과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장병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는 날이다. 전쟁에서 희생한 호국 장병들의 가족들의 가슴 아픈 슬픈 이야기는 얼마나 많겠는가? 한 가정에 남편을 잃고 어린 자식들을 키우면서 흘려왔던 피눈물은 얼마이겠으며 가슴 찢어지는 많은 사연들과 자식을 잃은 부모의 통곡은 또 어떠하겠는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후손들은 이분들의 희생과 아픔을 생각하고 그 고귀한 희생의 덕으로 이렇게 편하게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진정으로 그분들께 감사하며, 뜨거운 마음으로 현충일을 추모해야 할 것이다.

1950년 6월25일부터 1953년 7월27일 3년 1개월 2일 동안 벌어진 전쟁에서 한국군 전사 13만8천여 명, 부상자 45만여명, 실종자 등 합계 60만9천명이고, 민간인 희생자와 인민군에 의해 학살당한 자, 치명적인 부상자, 행방 불명자 등을 모두 합치면 100만이 넘는다고 한다. 얼마나 큰 비극인가?

필자는 천안함 폭침 사건이 있었던 그 해, 천안함 용사들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대전 현충원에 찾아갔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 바친 장병들의 묘지 앞에 그 어떤 말이 필요하랴? 그저 눈물이 나왔고 고개가 숙여졌다. 비극이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비극의 현장이었다. 천안함 전몰 용사들 묘비에 새겨진 못다 살고 간 짧은 생전에 어리고 앳된 사진을 보니 가슴이 북받쳐서 눈물이 절로 났다. 그들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그들의 유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괴로웠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 뿐아니라, 평생을 안고 가야하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신 분들의 고통과 삶의 경제적인 어려움 또한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무엇으로 그분들의 희생을 보상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작금의 현실은 불행하게도 사상과 체제가 다른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으르렁 거리고 있다. 심지어 남과 북으로만 갈라진 것이 아니라, 영남과 호남, 노년층과 청년층으로 치열하게 분단이 되어있다. 게다가, 6·25 전쟁이 `북침`이라며 학교에서 교육하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통탄할 노릇이다.

아브라함 링컨의 남북전쟁 전몰자들을 위한 국립묘지 헌정 기념사인 `게티즈버그 연설`의 내용을 보면, “우리는 여기서 앞서간 사람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굳게 결심해야 합니다.이 나라가 하나님 아래에서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해야 합니다.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 이 나라의 자유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피와 죽음으로 지킨 자유 대한민국을 반드시 지키자. 거짓 역사와 친북 세력들의 계략에 결코 넘어가지 말자. 이것은 우리의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