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숲에서 펼쳐진 경산시민 화합의 한마당 `2017 자인단오제`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여름.

쏟아지는 햇살은 절로 얼굴을 돌리게 만들고, 후끈 달아오른 거리는 외출에 나선 사람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계절의 여왕`이라 불렸던 5월. 그것도 주말의 5월을 집안에서만 보낼 수는 없는 일.

경산시민들은 흥겨운 농악의 무대가 펼쳐지고, 신명나는 한판의 힘겨룸이 진행되는 현장을 찾아 자인면 계정숲을 향했다.

기자 역시 “즐겁고 의미 있는 축제”라는 풍문을 익히 들었기에 같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27일 화려한 막을 올린 `2017 경산자인단오제`.

수많은 전국의 농악인들이 모여 한판 난장을 벌인 현장엔 남녀와 노소를 불문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축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서둘러 찾아온 여름의 뜨거움을 압도했다.

불어오는 바람과 수령(樹齡)이 수백 년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그늘 아래 모여 앉은 경산시민들과 관광객들은 꽹과리와 징, 장구와 북이 만들어내는 농악의 멋들어진 화음에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고, 인근에 마련된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남·녀 씨름에 환호성을 쏟아내며 초여름 주말 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행사장 곳곳에 마련된 체험관광 코너에선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온 아이들이 종종거리는 발걸음으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잊을 수 없는 유년시절의 추억 한 장면을 그려냈다.

▲ 경산 자인단오제에 즐거움을 더해준 `여원무` 공연.
▲ 경산 자인단오제에 즐거움을 더해준 `여원무` 공연.

▲ `한장군`으로부터 유래한 유교적 제례에서 시작

`경산 자인단오제`는 신라왕조 시절부터 내려온 한국의 가장 오래된 축제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 출발은 신라 또는, 고려시대 사람으로 추정되는 `한장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북 경산시 자인면 지역 주민들은 수 세기 전부터 한장군을 마을 수호신으로 추앙해왔다.

`자인단오제`는 한장군을 숭배한 사람들의 제례(祭禮)의식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보편적인 견해다. 해마다 단오절이 되면 경산 사람들은 한장군의 묘소에 제사를 올리고, 굿과 호장행렬, 여원무와 팔광대놀이, 들소리와 씨름, 그네타기 등으로 마을의 화합과 결속을 다져왔다는 것이다.

경산시 관계자는 이를 “오랜 시간에 걸쳐 의례적으로 행해졌던 제례의식과 충의정신이 다양한 민속놀이를 통해 발현됐고, 여기서 발견한 예술성을 오늘에 이어가고자 하는 노력이 만들어낸 것이 `경산 자인단오제`”라고 설명한다. 지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신명을 이끌어내는 이 행사는 국가무형문화재 44호로도 지정돼 있다.

▲ 경산 자인단오제 행사의 하나로 준비돼 호평 받은 `창포 머리감기 시연`
▲ 경산 자인단오제 행사의 하나로 준비돼 호평 받은 `창포 머리감기 시연`

▲ `여원무`가 가진 예술성과 역사성

`2017 경산 자인단오제`가 막을 올린 27일 가장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 건 개막공연으로 펼쳐진 `여원무`였다. 자신이 지키던 지역을 침탈한 외적들을 연못으로 유인한 한장군의 지략을 춤으로 표현한 여원무는 여인으로 변장한 한장군이 화관(花冠)을 들고 춤추는 모습으로 널리 유명해졌다.

`여원무`의 피날레는 춤에서 사용된 꽃송이를 누구나 따가는 장면이다. 그 꽃송이가 풍년을 기원하며, 액을 막아주고, 병을 치료해준다는 고전적인 믿음은 아직도 여전하다. 이날 행사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꽃송이를 가지기 위해 웃음 가득한 흥겨운 다툼을 벌였다.

더불어 무대에서 선보인 `축원무` 등도 해가 저무는 계정숲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 자인단오제의 부대행사 중 하나인 `다례제`가 열리고 있다.
▲ 자인단오제의 부대행사 중 하나인 `다례제`가 열리고 있다.

▲ 4일간 축제로 하나 된 경산시민과 관광객들

지난 27일 막을 올린 `경산 자인단오제`는 30일까지 4일 동안 진행됐다. 이 기간 중 행사를 보기 위해 경산을 찾은 사람은 무려 1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29일 펼쳐진 단오음악회에는 3천 명이 넘는 관객이 운집해 축제를 즐겼다.

`창작아리랑 페스티벌`과 `아리랑 주제공연`이 선보인 28일과 `한장군대제`와 `창포 머리감기 시연`이 사람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한 30일에도 적지 않는 방문객들로 계정숲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경북 씨름왕 선발대회`와 `백일장·사생대회` `전국 사진촬영대회` 등도 참여자와 관람객들의 호평 속에 원활하게 진행됐다. `계정들소리`와 `송신제` 역시 평소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의 기대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창포 머리감기 시연`을 지켜본 어르신들은 옛 추억에 잠기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행사장을 찾은 김만석(80) 씨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단옷날이 되면 엄마와 누이들이 모두 냇가를 찾아 창포물에 머리를 감곤 했다”며, “70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그 모습을 이렇게 보게 되니 세월의 흐름이 새삼스럽다.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아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표정에선 그리움과 회한이 동시에 읽혔다.

▲ 2017 경산 자인단오제의 화려함을 보여준 아리랑제 공연.
▲ 2017 경산 자인단오제의 화려함을 보여준 아리랑제 공연.

▲ 경산의 다양한 명승지 구경도 겸해

`2017 경산자인단오제`를 찾은 관광객들은 계정숲 행사장 외에도 또 다른 `경산의 명승지`를 찾았다. 행사 기간 중 “간절히 기원하면 하나의 소원은 반드시 이뤄준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과 신라의 명장 김유신과 원효대사의 설화가 깃든 사찰 불굴사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경북 씨름왕 선발대회`에 참가한 여성 씨름 선수들.
▲ `경북 씨름왕 선발대회`에 참가한 여성 씨름 선수들.

북적이는 시끌벅적한 공간보다는 조용한 곳에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자 하는 관광객들은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산사(山寺)”로 유명한 환성사를 찾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인 심검당과 대웅전 수미단의 미려함에 매혹되기도 했다.

대구에서 아내, 아들과 함께 `자인단오제`를 보기 위해 경산을 찾은 홍민석(44) 씨를 경산시립박물관에서 만났다. 홍씨는 “역사유적을 돌아보며 몰랐던 것을 배우고, 흥겨운 공연을 통해 식구들과 즐거움을 함께할 수 있었다”며 “내년 단오 때도 경산을 찾을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2017 경산 자인단오제`를 준비한 관계자들은 이 웃음에서 내년 행사를 준비할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심한식·홍성식 기자

    심한식·홍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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