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8년이나 됐다. 지난 23일 봉화 마을에는 수만 명이 모여들어 추모식을 가졌다. 그의 동지이자 친구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추모행사에는 추모 열기가 훨씬 뜨거웠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대한민국을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 편견이나 반칙,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온전한 평가를 하기는 아직 이르다. 대통령이 되기 전 변호사 노무현과의 만남을 잠시 회상해 본다.

1999년 가을 가까운 후배로부터 노무현 변호사가 대구에 와서 교수들 몇 명과 대화를 가지고 싶다는 전갈이 왔다. 비교적 진보 성향의 교수들에게 전화를 해 보았으나 모두가 바쁘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연락해 온 후배의 체면도 생각하여 나 혼자라도 갈까하다 당시 어느 대학 총장께 연락을 드려 보았다. 예상외로 함께 가겠다고 하여 작은 식당에서 4명이 마주 앉게 됐다. 노 변호사의 첫 인상은 무척이나 소탈하고 좌석을 편하게 했다. 노 변호사는 당시 페놀에 의한 낙동강 오염으로 인한 경남북의 지역갈등에 관심이 많았다. 이 식사 자리에는 약간의 논쟁도 있었으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당시 노 변호사가 대통령이 되리라고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권위의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노 변호사의 당시의 태도는 대통령 당선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 후 노무현 변호사는 당내의 대통령 경선 후보로 거론 되는 시기 경북대학교를 방문했다. 당시 전산실 강당에는 학생들이 예상외로 많이 모여들었다. 몇 해 전 만났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학생들 사이에서 그의 연설을 듣게 됐다. 원고 없는 그의 즉흥적인 연설은 학생들에 상당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차별 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그의 연설은 학생들의 정서에 부합했다. 연설 말미에 노무현 변호사는 서슴없이 `흔들리지 않게 우리 단결해`하는 당시 운동권 노래를 선창했다. 학생들은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면서 박수를 보내고 그의 연설은 끝났다. 연설 후 퇴장하던 노 변호사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먼저 “이런 학생들 분위기이면 대통령 되겠네요.”하니 그는 “그렇지요.”하면서 표정은 매우 밝아 보였다.

그는 2002년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찬반으로 나눠져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했고, 사회 전반에 만연한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데도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미(對美) 외교에서도 그는 `대등한 관계`를 추구했으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북한과 긴장관계를 해소하는 데 힘썼다. 대통령 임기 말인 2007년 10월 4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분단 후 처음으로 걸어서 휴전선을 통과해 평양을 방문,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열고 `남북관계 발전 및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을 발표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아직 이곳저곳에 남아 있다. 특히 보수적인 TK 사람들은 그를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정치적 이상은 높았지만 한국 정치의 현실이라는 장벽은 그를 따라 주지 않았다. “대통령직도 못해 먹겠다”고 한 그의 독백은 한 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으로서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인간 노무현의 열정과 패기는 지금도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제 그의 동지이자 친구인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권위주의적 파격적인 행보는 노무현 대통령과 무척 닮아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치를 뛰어 넘는 것이 그의 정신을 계승 승화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