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공자는 `말`을 `부끄러움`과 등치시키는 논리를 구사했다. 논어 헌문편(憲文編)에는 `군자는 말을 부끄러워하고 행동은 앞선다(恥其言而過其行)`는 말이 나온다. 공자의 말씀 이면에는 `실천`과 `책임`의 가치에 대한 깊은 경계가 있다. 그러나 공자의 귀한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 정치권에서 더 이상 진리로 존중되지 않는다. 선거운동을 하러 나선 어떤 입후보자가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마을사람들이 “우리 동네에는 강이 없다”고 하자 당황할 줄 알았던 그 후보가 뻔뻔한 얼굴로 “그러면 강을 만들어서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다시 공약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과거 선거철 정치인들의 공약 기준에는 `실천가능성` 따위가 있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할 수 있다면 무슨 약속이든지 다 내뱉고 본다. 그나마 시민단체나 언론의 감시비판이 없다면 `달을 훔쳐다 주겠다`는 황당한 언약도 불사할 것이다. 실천이 뒤따르지 않아 발생하는 논란쯤은 우습게 여긴다. 현란한 수사와 교묘한 논리로 지난 언행들을 정당화시키면 그만이라는 심산인 것이다.

`국민 지지율 90% 육박`이라는 경이로운 국민관심을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내정한 고위직 인사들의 `위장전입` 논란으로 곤혹에 빠졌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병역면탈·부동산투기·세금탈루·위장전입·논문표절 관련자 등 소위 공직임명 `5대 불가사유`라는 것을 콕 집어 천명한 것이 족쇄가 됐다.

인사 청문 대상 고위공직 예정자들의 낙마(馬) 퍼레이드는 으레 일어나는 참사여서 아주 예견되지 못한 일은 아니다. 역대 정부에서 검증공세에 걸려 망신을 당한 총리·장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2명, 이명박 정부 10명이었다.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는 7명의 총리 후보자 가운데 무려 3명이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했고, 1명은 청문회까지 가지도 못 했다.

인사청문회는 미국이 230년 전인 1787년 헌법제정의회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의회 인준권을 규정하면서 세계에서 맨 처음 시작됐다. 부적격자를 완벽하게 걸러내는 백악관의 사전검증 시스템 덕분에 미국에서는 청문회에서 낙마하는 인사가 드물다. 한국은 2000년 6월에 인사청문회제도를 도입했으니 고작 17년이다. 우리 정치의 인사청문회는 험악한 `태클정치`의 사냥터다.

때마다 되풀이되는 인사청문회 파열음은 국민들이 원하는 공직자 윤리수준의 진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시대 변화의 느린 속도가 빚어내고 있는 비극이다. 바뀐 세상의 기준에 맞는 인재를 골라내는 일은 내남없이 무질서의 개흙밭에서 구르며 살아온 사람들 중에서 흙 묻지 않은 별종을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지난한 과제다.

여야 의원들 모두 상대방을 향해 날리고 있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비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대방이 어제 그랬다는 이유가 오늘 내 허물을 정당화시켜주는 증참이 될 수는 없다. 번번이 벌어지는 혹독한 인사검증 공방전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국가대표 축구선수 선발전을 씨름경기로 치르고 있는 듯한 희한한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

망국적인 `청백전` 정치의식에서 해방돼야 한다. 담백하게 사과하고 거듭거듭 양해를 구하는 길밖에 없다. 청와대비서실장이 나서서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이 어쩌고 하며 고상한 변명을 늘어놓거나, 여당이 앞장서서 “국민 10명중 7명이 찬성하는 총리인준 민심을 겸허히 받들라”는 식으로 여론독재를 획책할 일이 결코 아니다.

그것이 당장 `네모 난 세모`를 찾는 난해한 일일지라도 우리는 공직자의 윤리수준을 드높이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태클정치` 먹이사슬의 주식(主食)인 `빈 약속`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릇된 풍토부터 기필코 끊어내야 한다. `말을 부끄러워하고 행동을 앞세우는` 그런 선진정치가 무르익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나마나, 어물쩍 넘어가기는 참 어렵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