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화양읍 야경(夜景)은 아름답다. 크고 작은 가로등과 가정집 전등이 청도읍성 조명과 어우러져 화사한 빛을 던진다. 야삼경에 느릿하게 승용차로 한적한 길을 가노라면 그 불빛에 아련해지곤 한다.

물을 댄 논에서는 개구리들의 합창경연이 한창이다.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노래에는 더러 절박함 같은 것도 묻어나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그저 잠시 귀를 기울이며 소년시절 회상에 몸을 맡길 따름이다. 이팝나무와 아카시 꽃이 모두 져버린 가로에는 나무딸기가 서서히 자라고, 그들의 배후에는 6월의 향긋한 장과(漿果)가 내장되어 있다. 이따금 들리는 밤새 울음소리가 깊어가는 5월의 정취와 훈향(薰香)을 더한다. 그렇다, 눈부신 5월이다!

여름을 방불(彷佛)케 하는 더위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남아있는 이 시절의 축복은 온전히 가늠하기 어렵다. 세상의 모든 것이 생의 약동으로 춤추고, 살아있음을 축복하는 거나한 시절 아닌가. 그런 사품에 잠시 끼어드는 허망함에 헛웃음을 켠다. `자연보호`라는 시대착오적인 구호가 홀연(忽然)히 허탈하게 떠오르는 탓이다. 자연의 극미한 존재 가운데 하나인 인간이 그 자연을 보호하겠다고 설치는 꼴이 가관인 시절이 있었다.

우리를 자연보호 슬로건보다 더 깊은 우울과 절망의 나락으로 끌고 간 토건기획이 이른바 `4대강 사업`이었다. 200만~300만년을 유구하게 흐르고 흘러 지금의 물길을 잡은 4대강. 그런 강에 칼질을 해대며 강바닥을 헤집고 세멘 콘크리트를 들이부은 희대(稀代)의 사기(詐欺), 4대강 사업. 친환경적으로 자연을 개발한다고 선전해대면서 22조원 넘는 돈을 재벌기업들이 나눠먹은 국민적 사기. 강은 부패와 오염으로 썩어가고 생명은 하나둘씩 강을 버렸다.

얼마 전 문재인 정부가 4대강 보를 상시(常時) 개방하고 필요하다면 보를 철거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청량한 소낙비처럼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는 소식이었다. 애초부터 해서는 안 될 범죄수준의 사기행각이 4대강 사업이다.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이 아니라 호수다. 지하 용출수(湧出水)가 없거나 크고 작은 지류에서 적절한 수량이 인입되지 않는 호수는 죽는다. 우리 곁을 지키던 4대강은 그렇게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죽어가고 있다.

`도덕경` 구절을 들어 나는 4대강 사업을 반대했다.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며,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 노자의 논리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을 따르는 법이다. 장구한 세월 유장하게 흘러온 강을 개발논리로 무참하게 학살한 자들의 원죄가 불러온 참화(慘禍)는 새삼 되풀이할 필요도 없다. 우선 강을 살리고 강에 기대서 살던 뭍 생명을 소생시켜야 한다.

17~18세기 계몽주의에 의지해 19세기에 개화한 1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러하되 각각의 산업혁명 시기에 인간이 맞닥뜨려야 했던 각종 횡액(橫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너무나도 자명한 자연 파괴의 후과(後果)를 치지도외하고 주머니 잇속을 챙긴 자들에게 이성과 합리성의 채찍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오직 지금과 여기, 나와 마누라, 자식새끼들의 이해관계에 함몰된 자들의 사적(私的)인 이익편취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로 뭉친 정파(政派)의 앞잡이들과 고위관료, 토건재벌, 대학교수들이 한통속이 되어 벌인 희대의 사기행각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이 나라 금수강산은 비단 우리만 소유하고 향수하는 대상이 아니다. 대대로 물려주고 받아온 대물림의 공간이다. 어디 그곳에 포 크레인과 중장비를 들이대 사지(死地)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보의 상시개방 뿐 아니라, 보의 완전 철거까지 전향적으로 고려하는 담대한 실행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