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기신부·구미 도량본당 주임
어느 본당에서 보좌신부 시절, 신자들 사이에 유쾌하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 같은 업종의 교우들 사이에 반목이 생긴 것입니다.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지켜보기가 안쓰러웠습니다.

그래서 본당신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신부님, 신부님께서 두 신자들을 좀 중재해 주시지요.”

하지만 본당신부님께서는 “본당신자들이긴 하지만 밥그릇 싸움에는 참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애송이 보좌신부가 보기에 본당신부님께서 조금은 무책임한 듯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뭔가 경험이 있으시거나 깊은 뜻이 있으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 반목은 차차 옅어졌고 저는 그 본당을 떠났습니다.

본당 사목을 하면서 그와 비슷한 일을 가끔 보게 됩니다. 신자들 사이의 밥그릇 싸움입니다.

이런 일을 볼 때마다 그 본당신부님의 충고를 생각하게 됩니다. “경거망동 하지 말고 조심해라. 어쭙잖게 끼어들면 양쪽이 다 원망한다.” 그 충고말씀이 참 고마웠습니다. 밥그릇 앞에서는 교회도, 하느님도, 신부도, 수녀도 없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밥그릇 싸움에 안 끼어들면서 어떻게 그 충고를 이해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이렇습니다. 밥그릇이라고 해서 한 가지 밥그릇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밥그릇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다릅니다. 모양도 다르고 냄새도 다르지요. 밥그릇이 결국 먹고 살기 위한 것과 결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지위와 명예의 밥그릇을, 다른 이는 인정과 칭찬의 밥그릇을 찾습니다. 어떤 이는 간장종지만한 밥그릇에도 만족하지만, 다른 이는 대용량 밥그릇도 빼앗기지 않으려 애씁니다. 그리고 그 밥그릇에 손을 대는 자는 누구든 용납하지 않습니다. 신부든 교회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부니까, 교회니까 내 밥그릇을 지켜달라고 요구합니다.

수많은 밥그릇 싸움은 분열을 가져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그나마 파멸로 귀결되지 않는 것은 밥그릇을 양보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까요? 분열의 원인이야 수없이 많겠지만 역시 그 놈의 밥그릇이 큰 문제입니다.

강대국들의 이념(이데올로기)이라는 밥그릇 싸움 때문에 동족끼리 전쟁을 치르고 아직 남북분열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밥그릇일지도 모릅니다. 그 밥그릇 안에서 또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다면 어떡하지요?

예수님 : “용서해라, 네 밥그릇에 손대는 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