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찬<br /><br />김천대 교수
▲ 김동찬 김천대 교수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석차 방중한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 19일 해안경비대 행사에서 한 연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필리핀의 분쟁 해역 석유 시추 추진에 반발, 전쟁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위협했다”라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가 20일 보도했다. 강력한 철권 통치로 유명한 두테르테 대통령이 전통적인 우방 미국에 거리를 두고, 최근 과도한 친중 행보를 거듭하는데 대한 비판론을 의식한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최악의 상황까지 언급한 중국 시진핑의 발언 배경과 진위 여부에 전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과 필리핀간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필리핀 뿐만 아니라, 남쪽에 있는 베트남과도 전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베트남의 역사는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 역사이다. 중국과의 항쟁 1천년, 프랑스와의 투쟁 100년, 다시 미국과의 싸움 8년. 베트남 역사는 끊임없이 침략자에 억눌린 가난과 질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그 어떤 이념도 아닌 그들의 가족과 민족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그 오랜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자연 조건의 영향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그들만의 끈기와 인내를 지니게 되었다.

1천년 이상 중국 왕조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은 938년 하롱베이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독립했다. 그러나 명나라 영락제 때 다시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레러이(黎利·1385~1433)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레러이는 1418년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며, 전쟁에서 전력이 기울 땐, 멀리 달아나 전투력을 보전하고 재기를 노려야 한다는 전략으로 접근했다. 명나라군이 진격하면 높은 산으로 달아나 유격전을 벌였고 명군이 후퇴하면 끈질기게 쫓아가 공격하는 방식을 택했다. 매복과 유인, 기습이 성과를 거두면서 베트남군의 전쟁 능력도 점차 강화됐다. 결국 1427년 명나라 10만 대군을 전멸시키며 베트남을 재독립시켰다. 매복과 유인, 기습을 중심으로 한 레러이의 전공법은 20세기 베트남전에서도 사용되었다.

베트남의 역사는 중국 통일왕조들과의 생존 투쟁이 무엇보다 가장 큰 줄기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 역사 속 베트남의 전쟁 영웅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 속에서 국난을 극복하는 지도자들의 자질을 찾을 수 있다. 몇 배나 강대한 적국이 침략해 올 때 베트남의 전쟁 영웅들은 어떻게든 분열된 지도층을 하나로 묶고 백성의 지지를 받으며 병사들의 희생을 끌어냈다. 베트남 전쟁 영웅들이 보여준 실제 삶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크다.

베트남 사람에게 공통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백의 민족`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베트남 사람에겐 일종의 `자존감`이 있는 듯 보였다. 1세기에 걸쳐 계속된 식민지와 내전, 그리고 강대국과의 전쟁 등을 거치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일견, 우리에겐 그들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공산주의 국가로 `적대적` 시각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데올로기를 넘어 민족의 자존심, 나아가 언제라도 내 조국을 위해 총을 들 수 있다는 자존감으로 보아야 옳을 듯 싶다.

영토의 크기, 인구의 숫자가 그 나라의 국력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 국민들의 투철한 정신 상태, 자존감, 협동심이 그 나라의 국력이다. 어떤 나라에게도 당당한 베트남의 모습을 보면서, 최근 시진핑 주석 앞에서 90도로 절을 하며 친서를 전한 중국 특사의 모습을 보니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이 더욱 상처를 받는 것 같아서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