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보수주의 원조는 영국의 에드먼트 버크이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급진성을 우려하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성`이라는 책에서 보수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예측대로 프랑스 대혁명은 독재자 루이 16세를 단두대의 이슬로 보냈지만 혁명 후 사회적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가중됐다. 급진적인 자코방의 무소불위의 권력은 테르미도르의 반동을 초래하고, 나폴레옹의 독재 권력까지 옹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처럼 보수주의의 그 출발은 국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기존 질서와 가치를 보존하자는데서 출발하였다. 보수주의는 결코 개혁을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보수세력과 보수 정당이 개혁을 거부하고 체제유지 만을 목적으로 안주했다면 그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 동안 한국의 보수 정당들은 독재 권력이든 국정농단 세력이든 기존의 권위와 기득권 유지를 우선 과제로 설정했음은 부인할 수 없으며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이는 이 나라의 보수정당이 과거 역사의 훈구(勳舊)파나 수구(守舊)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자유`의 말살과 권력의 독점화로 붕괴되고, 박정희 공화당 정권이 `공화`라는 이름으로 `유신 독재`로 망한 것도 같은 이치이다. 이번 보수 정당의 정권 연장 실패도 보수 개혁의 실패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초래된 탄핵문제는 보수 집권당의 분당으로 이어져 보수정당은 대선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역사는 보수가 개혁을 방기하고 체제에 안주할 때는 필망(必亡)한다는 교훈을 잘 보여주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바른정당은 `진짜 보수`를 앞세워 새누리당에서 탈당하게 된다. `참 보수`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겉으로 당내의 노선의 차이로 비쳤지만 사실은 당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비롯되었다. 보수 정당내의 탈당과 분열은 보수 논쟁의 계기가 되어 정치사적으로 다행한 일이다. `바른 보수` `따뜻한 보수`를 표방한 바른정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당명에서 드러내 보였다. 자유한국당은 보수의 본질인 `자유`를 통해 한국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들 양당은 대선 패배 후 보수 정당의 이념과 정체성을 두고 다시 격돌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상호 보수의 적통을 주장하며 보수 논쟁을 재개할 것이다.

이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참 보수의 경쟁을 통해 보수 정당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할 시점이다. 과거 새누리당내의 친박과 비박의 갈등은 파벌정치, 패권 정치이지 결코 보수 정체성 논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른정당 역시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어정쩡한 노선만으로 보수 정당의 정체성을 세울 수 없다. 사실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 역시 친노, 친문, 비문의 대립과 갈등은 진보 경쟁과는 상관없는 패권 쟁탈전일 뿐이다. 한반도의 전쟁과 분단이라는 상황의 산물이지만 이 나라의 정의당을 제외한 4당은 모두 보수 정당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 이들 모두는 보수주의가 추구하는 인권, 자유, 민생, 안보의 가치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철저히 점검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치에서 대선 후 협치가 어느 때 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도 보수 정당은 보수를 위장한 `가짜 보수`가 아닌지를 철저히 자기 점검해야 한다. 스스로 보수 정당을 자처하면서 권력유지에 안주하지 않았는지, 합의와 타협이라는 민주적 가치보다는 파당적 패거리 정치에 야합하지 않았는지 더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 구현에 얼마나 기여하였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의 보수 정당은 이제 새로운 보수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상대를 비열한 `바퀴 벌레`로 매도하거나 `낮술 추태`로 비난하는 정황은 보수의 본질적 논쟁과는 거리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