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지역 고인돌·선돌
건축 등으로 점점 사라져
지석묘도 파괴·유실 이어져
30년 만에 31기에서 4기만

▲ 31기의 지석묘 중 4기만 남은 경산시 용성면 곡신리의 지석묘 하나가 정수근씨의 집터를 차지하고 있다. /심한식기자

【경산】 지역의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아야 할 선사유물이 이기주의와 무관심 속에 사라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경산지역은 수해와 한해 등 자연재해가 거의 없고 넓은 농경지 덕분에 정착하기에 좋아 지역 어디에서나 선사유물인 고인돌(支石墓)과 선돌(立石)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농작의 기계화와 산업개발, 재산권 행사에 따른 건축 등으로 대부분 사라지고 있으며 남은 유물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이중 경산지역의 지석묘는 몇 기의 기반식을 제외하고는 대개가 뚜껑 돌과 지하 돌방 사이에 받침돌 없이 뚜껑 돌이 직접 돌방을 덮는 형태인 개석식(蓋石式)이며, 탁자식은 한기도 발견된 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들 지석묘는 하양읍, 진량읍, 와촌면, 용성면, 남산면, 남천면, 자인면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입석도 압량면과 용성면, 자인면, 대정동 등에서 발견돼 조사된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민가와 농지, 민간묘역에 있어 파괴되거나 유실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1986년 영남대 박물관의 조사에서는 31기가 기록된 용성면 곡신리 31기의 지석묘는 1997년 영남문화재연구원 조사에서는 11기로 줄었고 현재는 정수근(84·여)씨의 소유부지에 4기만 남아있다. 정수근씨는 “고인돌과 함께 생활하는데 어려움을 느낀 적도 없고 남들이 훼손할 때도 없애야 한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료와 구전에 의하면 용성면에는 미산리와 고은리, 고죽리, 곡란리, 곡신리 등에 100여 기의 지석묘가 존재했고 용성면 곡란리 6호 지석묘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내는 신체로 지금도 대접을 받고 있지만, 지역의 지석묘는 시의 자료나 용성면의 자료에도 존재 여부가 정리돼 있지 않은 등 홀대를 받고 있다.

지석묘에 대해 경산시의 자료협조를 받은 것은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3년 발굴해 유적공원으로 조성한 남천면 삼성리의 1, 2, 3호 지석묘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서부택지개발사업지구 내에 보존한 옥곡동 선사유적공원(청동기)의 1기가 전부다. 남천면은 유적공원의 조성에 힘입어 지역의 지석묘 24기에 대한 조사와 함께 사진기록물로 남겨 놓았으나 현재는 사라진 지석묘도 있다.

이처럼 고대의 문화유산이 행정기관의 무관심과 이기주의 속에 점차 사라지고 있어 고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보존대책 수립이 시급한 실정이다.

/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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