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1925년 4월 개벽(開闢) 58호에 발표된 박영희(朴英熙)의 소설 `사냥개`는 30년대 이후 밀려든 피할 수 없었던 문명사를 미리 내비친 단서로 회자된다. 첩을 다섯이나 거느리고 사는 인색한 부자인 주인공 정호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좋은 사냥개를 사서 키우면서 밥을 굶긴다. 온갖 악몽과 환영에 시달리던 정호가 안방으로 가려다가 배고픔으로 밤새 짖어대던 사냥개에게 그만 물려 죽고 마는 것으로 소설은 끝맺음된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에 칼을 빼들었다. 검찰이 달라져야 나라가 바뀐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상당히 오래됐다. 우리는 그 동안 칼과 저울을 들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명을 지닌 검·판사의 충격적인 타락상 앞에서 할 말을 잊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홍만표 전 검사장, 최유정 전 부장판사에서부터 진경준 검사장, 김수천 부장판사, 김형준 부장검사까지 일부 전·현직 판검사들의 비리 행태는 법률 청부업자나 사법 거간꾼에 가까웠다.

사법정의를 위협하는 보다 근원적인 폐단은 `정치검찰` 논란이다. 사실상 우리 검찰은 유권무죄(有權無罪)의 힐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별로 없다. 권력의 칼자루와 가까운 사범들에게는 솜방망이 처벌 일변도인 반면, 다른 혐의자들에게는 가혹한 법 집행을 한다는 편파수사 시비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정치검찰`은 외견상 형평성을 맞추는 척하면서 차별적 처리에 능한 기회주의 실력자들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일부 정치검사, 부패검사들의 고질적 일탈을 놓고서 검찰 모두를 마치 범죄 집단처럼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왜곡된 조직문화 속에서 출세지향주의에 빠진 일부 구성원에 있다. 대다수의 검찰이 올곧은 사명감으로 정의와 공익을 지키기 위해서 무한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순기능마저 없다면 이나마 우리 국가사회가 질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 대전고등검찰청 검사가 임명된 것은 연수원 기수가 다섯 계단이나 내려갔다는 점에서 파격 그 자체다. 200명이 넘는 검사를 거느리는 서울중앙지검의 검사장은 법무부 검찰국장과 함께 검찰 내 `빅2`의 요직이다. 윤 지검장은 지난해 박영수 특검에 발탁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등 대표적인 `특수통` 강골검사로 통한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권력자들이 국가기관을 장악해가는 힘의 원천은 `인사권`이다. 윤 지검장 인사를 놓고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절차상 하자`라는 시비가 일고 있다. 검사를 임명할 때 법무부장관의 제청을 듣게 돼 있는 현행 검찰청법 34조(검사의 임명 및 보직) 1항을 준수했느냐 아니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일단 청와대는 요지부동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광석화 같은 파격인사를 신호탄으로 검찰개혁을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와 수사·기소권 분리 등 각종 제도 개혁과 부패 검사들에 대한 인적 청산이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검찰개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어떤 정권이 오더라도 검찰을 한낱 사냥개로 야비하게 부리지 못하도록 공정하고 독립적인 인사행정의 틀을 짜놓는 것이 핵심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따라다니는 어록들이 국민들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장의 증인으로 나와서 한 “나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위법한 지휘·감독은 따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또한 박영수 특검팀 수사팀장 당시 보복수사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라고 일축했던 일화도 있다. 검찰이 `권력의 사냥개`라는 오랜 원성으로부터 부디 벗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사람`이 아닌 `국민`에게만 충성하는 새롭고 참다운 검찰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