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은 그동안 상처받은 광주정신을 다시 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광주에서 열린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80년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현장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던 민중가요다. 1981년 소설가 황석영과 당시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음악인 김종률 등 광주 지역 노래패 15명이 공동으로 만든 뮤지컬인 `넋풀이 -빛의 결혼식`에 삽입된 곡으로, 1980년 5월 27일 5·18 광주 민주화운동 중 전라남도청을 점거하다가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곡이다.

김종률이 곡을 썼고, 가사는 시민사회 운동가 백기완이 1980년 12월에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지은 장편시 `묏비나리 -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의 일부를 차용해 황석영이 붙였다. 이 곡이 대중에 처음 공개된 것은 1982년 2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에 합장하면서 영혼결혼식을 거행할 때였다.

이 노래는 그후 카세트테이프 복사본, 악보 필사본 및 구전을 통해 노동운동 세력 사이에 이른바 `민중가요`로서 빠르게 유포됐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적 대표곡으로서 자리잡았다. 필자도 대학 시절 시위현장에서 이 노래를 친구들과 함께 부르며,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결심을 다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군사정권 하에서는 유포와 가창이 금지됐던 이 곡은 주로 구전의 방식으로 전파됐다. 그러다보니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가사나 가락이 조금씩 다르다.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가사와 대한민국의 공식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념식에서 기념곡으로 제창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젊은 날의 감동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이처럼 따라 읽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뭔가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것은 이명박 정부 시기였던 2013년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별도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공식 기념곡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이렇게 되자 5·18 관련 단체는 2010년부터 정부 주관 기념식 참석을 거부하고, 별도의 기념식을 여는 등 크게 반발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고있는 와중에 5월 9일 조기대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대통령은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

정치권에서도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여야 3당은 5·18 민주화운동 37주년인 18일 `임을 위한 행진곡`의 공식기념곡 지정 문제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당도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니 조만간 여야 협의에 따라 기념곡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번 5·18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서에 일어서서 옆에 있던 정세균 국회의장과 이 노래를 작곡한 김종률씨의 손을 잡고 노래를 함께 불렀다.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 방식으로 부른 것은 9년 만의 일이다. 대통령 한 사람의 결단이 사회적 갈등을 얼마나 쉽게 마무리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