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희선<br /><br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선거 날 날씨 한 번 더럽네” 주제 사라마구가 쓴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선거일, 투표하러 오는 사람들이 전혀 없어 선거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던 오후 4시에 갑자기 수천 명이나 되는 유권자들이 투표소로 몰려가며 상황이 반전된다. 그러나 개표가 되자 유효표는 25%에 미치지 못하고 “전체 표의 70% 이상이 모두 백지였다”는 당혹스러운 선거결과로 다시 화창한 날에 실시된 재선거에서도 백지투표는 83%를 차지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왜 시민들은 백지투표를 던졌을까?

지난 5월 9일은 미세먼지와 비로 전국적으로 하루 종일 날씨가 흐렸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77.2%가 참여하여 15대 대선 이래 20년 만에 높은 투표율을 보여주었다. 사전투표율 26.1%로 유권자들의 높은 관심을 알 수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이 진행되고 두 달 만에 보궐선거로 치러진 대선은 한국의 민주주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내우외환의 상황에서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으며 제19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광화문 광장은 민주주의 역사의 증거가 되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비롯된 우리 사회의 적폐를 개혁하라는 촛불시민의 메시지가 선거 결과로 드러났다.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광장의 민심이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하였다. 5월 대선은 시민과 더불어 시민 속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들으려 광장에서 끝까지 촛불을 들고 행동해 왔던 후보를 당선시켰다. 세월호 사태에 단식을 통해 유가족의 슬픔에 공감을 표하고, 노란색 리본을 달고 방송토론에도 나오고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과 만났던 후보를 선출하였다. 상징적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유세 마무리를 할 만큼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꿈꾸며 광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던 지도자를 선택한 것이다.

민주주의 선거에서 한 표 한 표의 무게는 묵직하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가 표현되고 수렴되는 장이기 때문이다. 5월 선거는 원칙과 정의에 기반해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낸 힘이 촛불 민심이었듯이, 5월 대선도 시민들은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후보를 선택하였다. 이익과 권세가 사람보다 우선시 되는 시대가 낳은 많은 문제를 일소하고, 도덕적 정당성에 기초한 한국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염원들이 반영된 것이다. 좀 더 준비된 후보가 신중한 개혁과정을 통해 변화와 통합의 시대를 만들어 갈 것을 기대한 것이다.

새 대통령은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을 살리는 일에 우선하길 바란다. 소외된 국민을 살피고 한결같이 낮은 자세에서 국민들과 소통하는 대통령이길 기대한다. 맹자는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나누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왕의 자세라고 하였다. “천하 사람들과 즐거움을 함께 하고, 천하 사람들과 근심을 함께 하고서도 통일된 천하의 왕이 되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하였다. 전국 칠웅이 겨루는 혼란한 시대였음에도 인과 의에 기반한 왕도정치를 통해 민심과 민생을 최우선에 둘 것을 강조하였다.

국민을 아끼고 섬기는 대통령이 시대 정신이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다. 광장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함께 하는 힘이 만들어내는 큰 변화다. 권력을 감시하고 불의에 항의하며 민주주의 역사를 써가는 주체가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주권자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투표하고 올바르게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뿌리 내리는 것이다.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세상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눈뜬 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제 촛불시민이 열망하던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