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윤 배
후박나무 그림자가 길어져도 문 여닫는 소리가 없다
바람이 혼자 산다
바람처럼 드나드는 그녀는 발소리도 말소리도 없다
바람을 먹고 사는 바람꽃이 찾아오는 날은
그녀를 떠나 있던 물 긷는 소리도 오고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온다
헌 집은 소리들, 미세한 소리들로 차고 기운다
후박나무 그림자가 더욱 길어지고
그녀는 후박나무 아래서
바람을 더듬는다 바람의 여린 뼈가 만져진다
그녀는 주름투성이의 입술을 문다
후박나무 잎새들이 검게 변한다
헌 집이 조금씩 산기슭으로 옮겨간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그녀의 새집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후박나무 그림자는 안다
시간이 조용히 다녀간 헌 집 늙은 개 한 마리 봄볕에 졸고
바람꽃 찾아와도 물 긷는 소리 들리지 않는다
혼자 사는 한 노파의 낡고 쇠락한 헌 집의 정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 집에 사는 노파의 평화로운 삶의 모습도 함께 비춰주고 있는 것이다. 바람만 드나드는 집에는 바람과 함께 노파가 살아가고 있다. 고적하고 고독한 생을 마감해가는 노파와 헌 집을 담담하고 안정된 어조로 풀어내는 참 평화로운 느낌의 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