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유강은 번역
교유서가 펴냄·인문

현대 지성사의 고전인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교유서가)가 원서 출간 후 반세기 만에 국내 초역됐다. 1964년도 퓰리처상 넌픽션 부문 수상작이다.

이 책에서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반지식인 전통의 저류에는 복음주의 신앙에 입각한 민중의 반권위주의적 심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핵심에는 지식을 독점하는 엘리트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이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한다. 1952년,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지성`과 `속물`이 대립하는 구도였다. 결국 아이젠하워가 압승했고, 이로써 미국 사회가 지식인을 거부한 것으로 이해됐다. 이런 분위기는 미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돼, `반지성적`이라는 말은 미국인들이 자기평가에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형용어가 됐다.

저명한 역사가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이런 정치적·지적 상황에 촉발돼 `반지성주의`라는 개념을 축으로 미국사를 되짚는다. 청교도주의와 건국의 정신을 재검토하고 18세기 중반 식민지 아메리카에 확산된 신앙부흥운동에서 20세기 후반의 빌리 그레이엄에 이르는 계보, `전문가`의 등용을 둘러싼 지식인과 정치의 갈등, 경제계에 스며든 실용주의, 존 듀이의 교육사상, 마크 트웨인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문학 등을 자세히 살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의 이런 정신 풍토를 비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란 무엇이고 지식인은 민주주의의 실현에 기여할 힘이 될 수 있는지 묻는다.

`반지성주의`라는 말은 이 책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의 관련 논의를 계기로 일반적으로 통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미국에서 반지성주의적 현상은 이미 식민지시대부터 나타났고 1950년대에 두드러졌다고 본다. 대개는 “데이터나 증거보다 육감이나 원시적인 감정을 기준으로 사안을 판단하는 태도나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반지성주의는 실제로는 좀더 다의적인 관점을 내포한다. 또한 저자는 이 말이 반드시 부정적인 뉘앙스만 가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지적 권위나 엘리트의 문제를 생각하는 경우에는 반지성주의적 관점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성과 권력이 결합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 반지성주의의 원동력이며, 반지성주의가 부정하는 것은 `지성`자체가 아니라 `지성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반지성주의는 `반-지성`의 사상이 아니라 `반-지성주의`의 사상인 것이다. 반지성주의의 출발은 신 앞의 평등이라는 종교적 확신에 근거해 지상의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정신이다. 종래의 지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지성을 낳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런 힘은 사회의 쇄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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