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프랑스 ②

▲ 몽마르트르 언덕 위 사크레쾨르 성당에서 내려다본 파리 시내 전경.
▲ 몽마르트르 언덕 위 사크레쾨르 성당에서 내려다본 파리 시내 전경.

누구나 마찬가지다. 낯선 곳에서 맞는 아침은 어색하다. 평소 살아온 공간으로부터 수천 km가 떨어진 곳. 전날의 과음으로 인해 편치 않은 위장을 달래줄 방식이 한국과는 판이한 프랑스.

콩나물국이나 뜨끈한 새우죽을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해장 방법을 찾아야했다.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을 뜨지 않은 새벽 6시. 허한 속을 달래줄 뭔가를 먹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다행이었다. 가까운 곳에 빵집이 있었다.

바게트, 크루아상, 베이글, 샌드위치…. 이른 시간임에도 파리의 제과점은 갓 구운 빵들의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로 가득했다. 검은 머리칼이 한 올도 보이지 않는 은발의 할머니가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와 따스한 웃음이 세련돼 보였다.

그런데, 빵을 고르고 값을 치르는 방식이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할머니의 새벽 빵집을 찾은 손님 중 어떤 사람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한 걸음 떨어져 빵의 냄새를 맡아보고, 색깔로 구운 정도를 확인한 후 아주 천천히 몇 개의 빵을 고른 파리 사람들은 전혀 급할 것 없다는 태도로 줄을 서서 자신이 값을 치를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다닥~` 소리가 나도록 급하게 치즈케이크와 단팥빵을 쟁반에 주워 담고는, “빨리 계산해 주세요”라고 서두르는 `한국적 방식`을 보아온 기자는 조금 놀라웠다.

어떤 방식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이런 게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프랑스 사람들의 `여유`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허겁지겁 골라 재빨리 값을 치르고 먹은 어떤 빵보다 자그마치(?) 20분을 기다려서야 먹을 수 있었던 그날의 크루아상이 유난히 맛있었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 프랑스 연인들은 애정표현에 거침이 없다. 거리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커플.
▲ 프랑스 연인들은 애정표현에 거침이 없다. 거리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커플.

▲ 가난한 거리의 연주자들… 그러나 얼굴엔 미소가

파리에서 보낸 며칠을 떠올려보면 `한가로움`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소급된다. 프랑스가 지닌 `문화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 공간인 파리 국립도서관과 퐁피두센터를 찾았을 때다.

100m가 넘는 긴 줄을 서있음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선 조급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 행렬 속에 선 고등학생들은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었고, 기자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40~50대 파리 시민들도 손에 든 신문이나 잡지를 들여다보며 나른한 봄날의 햇살을 즐기는 듯 보였다.

비단 도서관이나 문화센터만이 아니었다. 파리 거리와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코디언이나 바이올린을 꺼내들고 버스킹(busking)을 하면서도 그들은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넉넉한 웃음이 그들을 `거리 연주자`가 아닌 유명한 공연장 무대에 선 `인기 뮤지션` 이상으로 멋져보이게 했다.

삶은 받아들이는 자들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기엔 궁핍하고 곤궁할 수도 있는 예술가의 삶.

하지만, 가난에 굴복하지 않고, 그걸 넘어 삶의 어떤 `궁극`에 닿으려는 노력이 있다면 허름한 입성의 거리 연주자가 연미복(燕尾服)을 갖춰 입은 유명 연주자만 못할 것이 무엇인가. 애초부터 예술은 돈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가난에 주눅 들지 않은 파리 거리의 음악가와 화가들을 보며 이런 물음을 던져봤다. “그들이 곤궁함 속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그건 다름 아닌 자신과 더불어 타자의 삶을 바라보는 `대범함`과 `여유`였다. 물질적 이유만으로 누구를 부러워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는 당당한 자세에서 오는.

 

▲ 잠시잠깐 내린 비가 그친 후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선 개선문이 보인다.
▲ 잠시잠깐 내린 비가 그친 후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선 개선문이 보인다.

▲ 야트막한 파리 시내, 거기엔 높은 인간적 이상이…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우리가 `프랑스의 장점`으로 인정해온 것들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를 쓴 망명객 홍세화가 말한 `톨레랑스(관용의 정신)`도 흔들리고 있는 것이 2017년 파리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속적으로 유입된 아랍계 이민자들에 대한 거부감은 적지 않은 프랑스의 청년들이 극우정당 `프랑스 국민전선` 대통령 후보인 마린 르펜(Marine Le Pen)을 지지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과도한 톨레랑스와 여유가 프랑스 젊은이들을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바뀐 세상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걸리면 모두는 예민해진다. 그건 동양인과 서양인, 젊은 세대와 노년층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의 밥그릇이 위협받는다고 불합리한 이유와 온당치 않은 방식으로 다른 이들의 숟가락을 빼앗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는 다시 한 번 오래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런 딜레마는 비단 프랑스만이 아닌 한국도 겪고 있는 사회변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저러한 상념에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려 센 강 주위를 산책하기도 하고, 어둠이 깔린 파리를 배경으로 유유자적 떠가는 유람선에 올라 수천 년을 소리 없이 흘러온 강물을 바라보기도 했다.

파리에 도착한지 사흘째였던가? 짙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의 유혹을 피할 수 없었던 날,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처럼 휘청휘청 몽마르트르 언덕을 향했다. 스스로의 그림자가 자신을 놀라게 하는 눈부신 오후.

사크레쾨르 성당 앞 난간에 올라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한눈에 들어오는 도시의 풍경.

10층 이상의 높은 건물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 소박하고 야트막한 풍경에서 기자는 보았다. 정체와 퇴행으로 오해될 수 있는 `프랑스의 모든 오류`가 버릴 수 없는, 아니 버려서는 안 될 `인간만의 이상`으로 전이하는 광경을. 그건 분명 취기에 의한 환시(幻視)가 아니었다.

 

▲ 샹젤리제 거리의 한 레스토랑. `포도주의 나라` 국민답게 와인의 향기를 맡는 파리 여인.
▲ 샹젤리제 거리의 한 레스토랑. `포도주의 나라` 국민답게 와인의 향기를 맡는 파리 여인.

`키스`와 `포도주`의 나라 프랑스

그곳이 아시아건, 유럽이건, 아프리카건 어느 국가나 그 나라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것들이 한두 가지는 있다.

한국의 김치와 일본의 스시(壽司)는 두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인 동시에 그 안에서 국민성의 일부분까지 읽어낼 수 있는 문화코드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동성과 이란 사람들의 한없는 친절도 그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 역시 나라를 상징하거나 대표하는 것들이 여럿이다.

그것들 중 두 가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바로 `키스`와 `포도주`. 앞으로도 오랫동안 `프랑스` 하면 이것들이 자연스레 떠오를 듯하다.

 

▲ 카메라를 보자 환하게 웃음 짓는 프랑스 할머니와 손녀.
▲ 카메라를 보자 환하게 웃음 짓는 프랑스 할머니와 손녀.

◇ 주야불문, 장소불문… 파리 연인들의 입맞춤

40대 중반을 넘어서니 어쩔 수 없이 `애정표현`에 있어선 다소간 보수적이 돼간다. 그런 기자에게 `키스하는 연인들`은 질투심과 부러움의 감정을 동시에 일으킨다.

파리를 여행한 7일 동안 키스 장면을 얼마나 봤던가? 골목에서, 카페에서, 강변에서, 심지어 슈퍼마켓 안에서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키스를 하는 프랑스 사람들. 젊은 커플들이 많았지만, 중년도 있었고 60대로 보이는 노인들도 입을 맞추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보수적인 경상도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겐 도시 전체가 `로맨스 영화 촬영장` 같아 보일 것이다.

파리 사람들은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란 말을 100% 신뢰하는 듯했다. 어둑어둑 해가 저무는 몽마르트르 언덕을 내려오며 보았다. 아시아계 남성과 유럽 여성이 애틋하게 서로를 안고 키스하는 모습을. 아름다웠기에 부럽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는 사랑에 빠지기 쉬운 도시다.

 

▲ 센 강 유람선을 타고 가며 본 파리의 야경. 아름답게 축조된 교량이 인상적이다.
▲ 센 강 유람선을 타고 가며 본 파리의 야경. 아름답게 축조된 교량이 인상적이다.

◇ 4유로짜리 와인의 근사한 맛과 향기

백포도주와 적포도주는 물론, 핑크빛 로제 와인과 기포가 입 안에서 시원스레 터지는 샴페인까지. 프랑스엔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수십 수백 종류의 포도주가 판매되고 있다. 게다가 가격도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다. 와인을 좋아하는 기자에겐 숙소 인근 조그만 슈퍼마켓의 주류 코너가 천국의 입구처럼 느껴졌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작품을 쓰던 카페에서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웠던 `생떼 밀리옹` 같은 고급 포도주를 마셔보는 호사는 파리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자도 걱정할 필요 없다. 구멍가게나 슈퍼마켓에선 4~5유로(5~6천원)면 맛과 향이 썩 괜찮은 포도주를 구할 수 있다. 치즈 몇 조각을 함께 산다면 여행에서 만난 숙소의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사진제공/구창웅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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