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사 인

내 고향동네 썩 들어서면

첫째 집에는

큰아들은 백령도 가서 고기 잡고

작은 아들은 사람 때려 징역에 들락날락

더 썩을 속도 없는 유씨네가 막걸리 판다

둘째 집에는

고등고시한다는 큰아들 뒷바라지에 속아

한 살림 말아올리고

애들은 다 초등학교만 끄을러 객지로 떠나보낸

문씨네 늙은 내외가 점방을 한다

셋째 집은

마누라 바람나서 내뺀 지 삼 년째인 홀아비네 칼판집

아직 앳된 맏딸이 제 남편 데리고 들어와서

술도 팔고 고기도 판다

넷째 집에는

일곱 동생 제금 내주랴 자식들 학비 대랴 등골이 빠져

키조차 작달막한 박대목네 내외가

면서기 지서 순경 하숙 쳐서 산다

다섯째 집에는

서른 전에 혼자된 동네 누님 하나가 애들 둘 바라보며 가게를 하고

여섯째 집은

데모쟁이 대학생 아들놈 덕에 십년은 땡겨 파싹 늙은 약방집 내외

갖가지 인생의 고달픔과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고향동네 이웃들의 삶을 상세하게 그려내면서 그 속에 배인 아픔과 한스러움 같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시골 소읍에 가면 이런 가슴 아픈 서사는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이 시에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어떤 아픔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은 얘기들이 소복하여 정겹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한 아침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