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저쪽 코너에 호프집이 있거든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면 막걸리집이 보입니다. 거기서 300미터 직진하시면 됩니다.” 신부님에게 길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저기 성당 보이시죠? 네, 그 성당을 지나서 100미터 가셔서 그 오른쪽으로 돌면 됩니다.”

사람들에게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고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수학자는 `덧셈`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대답한다. 신부님은 `십자가`라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 한다.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이 사물을 볼 때 생각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예화다. 모두의 관심이 쏠리는 대통령 선거 한 가운데서 사상 처음으로 자유토론방식의 TV토론회가 열려 장안의 화제가 됐다. 후보들간 현안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이들 후보들에 대한 평가가 쏟아졌다. 우선 우리 정치사상 처음으로 각본을 짜놓고 하는 토론이 아닌 자유토론 방식의 토론이 이뤄진데 대해서는 신선했다는 평가가 많다. 후보들 각각에 대한 평가는 서로 엇갈린다. 대체적으로 보면 공세적이었던 안철수, 유승민 후보가 다소 앞섰고, 여성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홍준표 후보는 평균작, 문재인 후보는 다른 후보들의 집중공세에 수세로 몰리며 다소 손해를 본 게 아니냐는 평가다.

실제로 이번 토론회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여론조사상 지지율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는 문재인 후보가 나머지 4명의 후보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받는 모양새가 연출됐다는 점이다. 주요 의제는 북한과의 인권결의안 기권 사전협의 논란, 주적 규정여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등이었다.

가장 먼저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 후보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북한에 의견을 물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됐다. 유 후보는 “작년 10월에는 기억이 나지않는다고 했고, 지난 2월 JTBC `썰전`에서는 국정원을 통해 북한에 물어봤다고 하고, 지난 13일 토론에서는 물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고 추궁했다. 이와 관련, 홍 후보도 “문 후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청와대 회의록을 보면 된다. 거짓말로 밝혀지면 어떻게 하겠냐”고 몰아세웠다. 이에 대해 문 후보가“국정원을 통해 북한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를 파악해 봤다. 북한에 물었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자, 유 후보는 “그게 물어본 것과 뭐가 다르냐”고 비판했다.

문 후보가 사드배치와 관련해 당초 반대하다가 조건부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입장을 표명한 것도 논란이 됐다. 유 후보는 이날 토론회에서 “북한의 5차 핵실험까지는 사드배치를 반대하다가 6차 핵실험을 하면 사드배치에 찬성한다고 했는데, 무슨 말이냐”고 따졌다. 문 후보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중국이 제어하는 역할을 못 한다면 배치할 수도 있다`라고 그렇게 대답을 했다”고 군색한 변명을 했다. 심 후보가 “그것은 평론가의 언어이지 정치 지도자의 언어가 아니다”라고 꼬집자 문 후보는 “전략적 신중함이 필요하지 않으냐, 이 고도의 외교·안보 사안에…”라고 얼버무렸다. 북한을 겨냥한 `주적`(主敵)논란도 있었다. 먼저 유 후보가 문 후보에게“북한이 우리의 주적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문 후보가 “그런 규정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즉답을 피하자, 유 후보는 “아직 대통령이 안 됐지 않느냐”라고 꼬집었다. 이어 유 후보가 “우리 국방백서에는 `주적`이라고 나온다”라고 말하자 문 후보는 “국방부는 할 일이지만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고, 유 후보가 또다시 “대통령이 됐는가”라고 따지자 “그렇게 강요하지 말라”며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후보에 대한 집중공격, 그리고 방어와 궁색한 변명으로 이어진 토론회가 지지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생각의 기준이 달라질만한 충격이 없는 한 급격한 판세변화는 일어나기 힘들다. 정치가 서서히 발전하는, 또 다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