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강일<br /><br />서울대 강사
▲ 공강일 서울대 강사

지난달에 송백산악회를 따라 산에 갔다가 아직 제대로 녹지 않은 비탈에서 미끄러져 목을 삐끗했다. 겨우 한 시간을 걷고 서는 말이다. 결국 산행을 포기해야 했다. 출발 시간을 잘못 알고 혼자 놀다가 한 시간이 넘어서 나타나는 바람에 산악회 대표 `진상`이 되었다.

이번엔 절치부심하고 연습을 했다. 우선 제대로 된 등산화를 구입했다. 시원찮은 목수가 연장을 탓하는 법이니까. 다음으로 한 시간 정도의 산행코스를 매일 걸으며 속도를 높였다. 늘 천천히 걸어서 그런지 빨리 걷는 일이 정말 어려웠다. 빨리 걷기 위해서는 무릎보다는 허벅지를 써야 하고 팔도 흔들어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안 쓰던 근육이라 그런지 허벅지와 팔이 심하게 당겼다.

연습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송백산악회에 여러 개의 산행팀이 있는데, 내가 따라간 곳은 백두대간 종주를 목표로 한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산의 줄기다. 대간 대부분의 구간은 도계와 일치한다.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산으로는 설악산(1,708m), 오대산(1,563m), 두타산(1,353m), 태백산(1,567m), 소백산(1,421m), 속리산(1,508m), 황학산(1,111m), 삼도봉(1,177m), 덕유산(1,614m), 지리산(1,915m)이 있다. 높은 산만 이야기했는데, 그 사이에는 진부령, 대관령, 죽령, 추풍령, 육십령, 영취산 같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봄직한 곳도 있다.

이 산악회에서 가이드를 하는 분들은 백두대간만 여섯 번에서 많이는 열두 번까지 종주한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무려 열 명이 넘는다. 이들은 선두, 중간, 후미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무전기로 서로의 진행상황을 연락한다. 정말 전문 산악회다. 하필이면 이런 산악회일 줄이야.

백두대간을 한 번이라도 종주한 분들은 이력이 붙어서 그야말로 산을 타듯이 넘는다. 상봉에서 상상봉으로 건너뛰듯이 말이다. 걸으면서 말도 하고 사진도 찍고, 식사할 땐 막걸리도 한 잔 한다. 난 숨 쉬는 것도 힘든데.

지난번엔 삼도봉을 넘었는데, 이번엔 황학산 또는 황악산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걸을 예정이다. 우두령(질마재), 삼성산, 여정봉, 바람재, 형제봉, 황악산, 백운봉, 여시골산, 괘방령으로 이어지는 14km 정도의 코스다. 보통 `악(岳)` 자가 들어가는 산은 `악`소리가 날만큼 힘이 든다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죽을 맛이다. 지난번엔 거의 20km를 걸었는데, 이번엔 좀 짧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산을 탈 땐 언제가 가장 힘들까? 단호히 말할 수 있는데 모든 지점이 힘들다. 처음 시작할 땐 바로 산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힘들고 중간 지점부터는 많이 걸어서 힘들고, 식사를 하고 나면 배가 불러서 힘들다. 내려올 땐 어디가 끝인지 몰라서 힘들다. 우두령에서 여정봉까지는 시작하는 구간이어서 힘들었다. 여정봉은 인터넷 지도에서 찾아보면 이름도 없는 산이다. 그래서 동네 뒷산처럼 느낄지 모르지만, 표지석에 따르면 그 높이가 1,030m나 된다.

이제 여정봉에서 황학산까지 가야한다. 산악회 회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 구간이 아마 오늘 구간 중에서 제일 힘들면서 지겨운 곳이라 했다.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고 했다. 여정봉에서 해발 800m 정도 되는 바람재까지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는 것은 좋은데 내려 온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갈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올라가면 또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회장님의 설명과 달리 지루하지 않았다. 아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냥 힘들기만 했다. 올라가면 내려오고, 내려오면 올라가며 얼마나 많은 봉우리를 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황악산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만큼 준비한 점심도 다양했다. 주먹밥, 김밥, 떡, 과일, 다들 인심도 넉넉해서 충분히 많은 음식을 가지고 왔다. 그 중에서도 반가운 것은 홍어와 막걸리였다. 산에서 먹는 밥은 확실히 다르다. 이 맛에 산을 타는지도 모르겠다.

 

▲ 여정봉에서 바라본 김천 대항면. 정상은 아직도 겨울인 듯 움도 틔우지 못했다. 그러나 산 아래는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내가 봄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저 연둣빛 때문이다. 이제 갓 돋아나기 시작한 새싹은 여리고 부드럽다. 연둣빛은 그런 것들이 내뿜는 빛깔이다. 산 아래에서는 이런 연둣빛이 지닌 다채로움을 감각할 수 없다. 그러나 정상에서는 층층이 쌓아올려진 빛깔들의 미세한 차이까지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연약하고 유약한 빛깔이 얼마나 느리지만 신중한 걸음으로 산을 타고 오르는지를 볼 수 있다.
▲ 여정봉에서 바라본 김천 대항면. 정상은 아직도 겨울인 듯 움도 틔우지 못했다. 그러나 산 아래는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내가 봄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저 연둣빛 때문이다. 이제 갓 돋아나기 시작한 새싹은 여리고 부드럽다. 연둣빛은 그런 것들이 내뿜는 빛깔이다. 산 아래에서는 이런 연둣빛이 지닌 다채로움을 감각할 수 없다. 그러나 정상에서는 층층이 쌓아올려진 빛깔들의 미세한 차이까지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연약하고 유약한 빛깔이 얼마나 느리지만 신중한 걸음으로 산을 타고 오르는지를 볼 수 있다.

용케 선두 그룹을 따라왔는데, 그 그룹에서도 나는 제일 꼴찌로 도착했다. 완전히 쉬지도 못했는데 그들은 먼저 출발한다. 뒤늦게 일행을 따라나섰는데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어디로 간 거지? 이정표는 이 길을 따라가면 직지사로 간다고 한다. 순간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난번과 같은 진상 짓을 하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한 1km는 온 것 같은데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지만,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돌아갔더니 중간그룹이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또 거기서 밥을 한 번 더 얻어먹었다. 혼자 가려고 했더니 같이 가자고 한다. 얼떨결에 중간그룹에 끼이게 되었다. 이분들은 선두그룹과는 달라서 때론 쉬기도 하고 단체사진도 찍기도 했다. 탁월한 개그 감각을 가진 분들이 내내 웃겨주었다. 덕분에 지루함도 힘듦도 덜 수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더니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지난번에 나의 진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산을 잘 탄다고 치켜 세웠다. 이런 식이면 다음번에도 따라가야 할 판이다. 오늘 식사는 회장님이 특별히 회원들 보신을 시키겠다며 백숙을 준비해 놓았다. 맛나게 먹고 막걸리도 마셨다. 오늘 산을 타며 빠진 살보다 더 찌게 생겼다.

올라가면 내려올 것을 무엇 하러 등산 같은 걸 하냐는 친구의 퉁명스러운 말이 생각났다. 그러게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산행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는 일의 과정을 축적해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산행의 결과물은 고작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 전부다. 가치와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산행을 통해 무가치를 체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알게 된다. 그러한 무가치함이 지닌 공백과 그 공백이 지닌 깊이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