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신부·김천 신룡본당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잘 듣고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그 뜻을 거스르는 행동만 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여러분은 부모님을 사랑하세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모두들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부모님 말씀은 잘 듣고 따르나요?”라고 다시 물어봤습니다. 우물쭈물 그렇지 못하다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왜 그럴까요?”라고 물으니 대답을 잘 못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져야하는 것이 당연한데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저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부모님, 남편, 아내, 자녀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잘 들어주고 계신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잘 듣고 잘 지켜야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렇지 못한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첫째,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 사람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피해가 오거나 내가 힘들다고 느끼면 언제든지 끝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지 못합니다. 이기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둘째,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사람이 원하는 사랑이 아니라 내 입장에서, 내가 원하는 식의 사랑을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랑만 고집하는 사랑입니다. 스토커나 의처증, 의부증 환자의 사랑을 올바른 모습의 사랑으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삐뚤어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셋째, 가슴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머리로만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의지력과 노력이 부족해서 실제로는 따르지 못합니다. 부족한 사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말을 잘 듣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복음 14, 23-29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혹여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말을 잘 지킬 때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온다는 것을 우리는 삶에서 경험합니다. 주님께서 남기신 평화가 늘 우리 안에 머물러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