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삶은 아름답고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생을 무조건 긍정하는 편은 아닌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낙관주의자가 된다. 삶은 사람의 준말이지 않은가. 좋은 사람은 단 한번 만나도 순간을 영원으로 기억하게 한다.

지난 주말 저녁이 그랬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낯을 가리는 편이라 오래된 친구 외에는 잘 만나지 않는 내가 홍대까지 외출을 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인 강백수 군이 서현진 아나운서와의 술자리에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그 자리엔 록밴드 크라잉넛의 한경록 형도 있었다.

편한 술자리지만 내겐 더없이 각별했다. 서현진 아나운서의 오랜 팬이기 때문이다. 10년 전 진행하던 아침 라디오를 매일 챙겨들었다. 푸르른 20대의 날들에는 언제나 아침을 깨워주던 서현진 아나운서가 있었다. 몇 년 전 라디오를 그만두었을 때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내 20대도 떠나갔다.

아나운서, 록커, 싱어송라이터, 시인이 모인 술자리의 한 구성원이 아니라 팬으로서 앉아 있자니 덥지도 않은데 땀이 나고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눈을 뗄 수가 없고 내 눈엔 서현진 아나운서만 보였다.

하지만 그날 저녁을 오래 기억하게 하는 것은 좋은 사람들의 좋은 태도였다. 정신 차리고 시인의 위엄을 지키기로 한 뒤부터는 대화에도 적극 참여하고, 잘 모르는 싱글몰트 위스키도 `음미`라는 것을 해가며 홀짝홀짝 마셨다. 한경록 형의 말대로 어떤 위스키에서는 벚꽃 향기가 났다. 네 사람 사이 오가는 대화에서도 나는 꽃 냄새를 맡았다. 향기로운 말 외에 다른 안주는 필요 없었다.

한 사람은 미스코리아 출신의 MBC 간판 아나운서였다. 또 한 사람은 한국 펑크록의 시조인 메가히트 밴드 크라잉넛의 리더다. 자기 분야에서 정상에 오르고 명예와 인기를 다 얻은 사람들이다. 콧대가 높을만도 하고 권위적이며 오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오만과 권위도 보지 못했다. 차별이나 편견은 더더욱 없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눈과 귀와 마음을 기울여주는 그들 덕분에 아직 시집 한 권도 못낸 무명시인과 공익근무 중인 가난한 싱어송라이터는 마음 편히 웃고 대책 없이 취할 수 있었다. 음악, 문학, 책, 영화, 연애, 가족, 반려동물, 공통된 것과 상반된 것에 대해 대화하며 밤이 깊었다. 기분 좋게 취해 상수동 밤거리를 걷는데 라일락이 달빛에 젖어 있었다.

서현진 아나운서와 한경록 형 모두 권위주의와 갑질, 기득권 폭력의 피해자들이다. 서현진 아나운서는 2009년 언론노조 총파업과 2012년 MBC 파업에 참여했다가 2014년 퇴사했다. 파업 이후 서현진, 김주하, 오상진 등 아나운서 11명이 회사를 떠났다. 한경록 형은 `인디음악`에 씌워진 대중의 편견과 외면, 오해와 끊임없이 싸워왔다. `인디`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성공한 지금, 후배들에게는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신인 밴드들을 물심양면 돕고 있다. 둘 다 약자의 입장을 잘 아는 사람들인 것이다.

MBC는 아직도 비정상이고, 암 투병 중인 이용마 기자를 포함한 해직기자들은 복직되지 않았다. 서현진 아나운서의 방송을 듣던 때는 지금보다 세상이 좀 더 좋은 곳이었을까. 그때보다 지금이 나은지 나쁜지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3주 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5명의 후보들은 모두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그중에서 오만하거나 권위적이지 않고, 약자의 처지를 공감할 줄 아는 사람에게 투표할 생각이다. 그러면 다시 서현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게 될 지도 모르니까. 좋지 아니한가.

그날 밤 나는 흥분해서 “`노팅힐`의 휴 그랜트가 된 것 같아!”라고 외쳤다. 다음날 술 깨고 보니 `노팅힐`이 아니라 영화 `심야의 FM`에서 수애의 사생팬으로 등장하는 마동석에 훨씬 가까웠음을 알아차리고 종일 괴로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