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태 준

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 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긁어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

역전 이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빛이 살고 있고

말라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한송이 꽃이 있다

그의 인생은 수초처럼 흐르는 물 위에 있었으나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이 땅 어느 소읍에든 있을 법한 풍경 한 장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미가 녹아 있고 사람의 정겨움이 스며있는 시골 이발소의 정경과 곱사등이 이발사와의 추억을 가만히 펼쳐보이며 시인은 정겹고 따스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 속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고 있다. 까까머리 머리통 벅벅 긁히며 몰래 춘화를 훔쳐본 적이 있는 필자의 어린 시절 동네 이발소와 꼭 닮아 있는 듯하여 가만히 눈 감아보는 아침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