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예기치 못한 탄핵사태로 치러지게 된 5·9 장미대선 초반 고질적인 영·호남 지역대결 구도가 깨졌다는 분석이 나와 주목된다. 한동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독주가 이어지던 제19대 대선판세는 한 달여를 남겨놓은 시점부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급상승으로 큰 변곡점을 맞았다. 영·호남의 지역대표를 표방하는 후보가 각광받지 못함에 따라 선거양상은 새로운 혼전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보수정치의 실종이다. 다당제 형태의 정당구조 속에서 선거전은 전통적인 진보-보수의 맞대결이 아닌 진보-중도의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물론 아직 공식 선거기간도 시작되지 않은 마당에 현재의 구도가 끝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민심의 향배를 가늠할 때 `지역성`이 선거를 좌우하게 될 개연성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역대 대선에서 `대구·경북(TK)=보수, 호남=진보`라는 공식이 항상 성립돼 왔다. 지난 18대 대선만 하더라도 지역 몰표 현상은 대단했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TK에서 80.5%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호남에서 8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자기 지역을 대표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지지하고 보는 `묻지마 투표` 행태가 사뭇 뚜렷했던 것이다.

9일과 10일 공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 경쟁 패턴은 대동소이했다. 다자대결에선 두 후보가 초박빙 접전을 벌였고, 양자대결에선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꽤 큰 격차로 앞섰다. 다자대결에서 양자대결 쪽으로 갈수록 안 후보의 지지율이 문 후보 지지율을 더 큰 폭으로 따돌리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TK지역과 호남지역에서 엎치락 뒤치락하는 맞대결 양상이 뚜렷하다. 조선일보가 여론조사업체 칸타퍼블릭에 의뢰한 지지율 조사결과 TK에서 안 후보(40.0%)가 문 후보(20.6%)를 앞섰고, 호남에서는 안 후보(39.9%)와 문 후보(36.9%)가 접전 양상을 보였다.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지지율은 TK에서 안 후보(31.7%)와 문 후보(31.4%)가 박빙 접전을 벌인 반면, 호남에서 안 후보(50.7%)가 문 후보(39.9%)를 압도했다.

보수정당의 지리멸렬 여파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는 하나, 영·호남의 고질적인 죽고살기식 정쟁이 완화된 것은 새로운 변화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영·호남의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지역대표성만을 후보선택의 으뜸기준으로 삼는 폐해가 종식되리라는 기대는 섣부르다. 하지만 정치지도자들을 뽑는 관점이 `정책` 쪽으로 집중되는 바람직한 풍토가 좀더 확산되기를 바란다. 오직 정책만을 보고 지지후보를 선택하는 선진적인 선거로 가는 소중한 출발점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