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희선<br /><br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이제 여자를 대통령 시키면 안된다`는 여론이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대한민국에서 앞으로 100년 내로는 여성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마라”고 했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성이었기에 문제가 발생한 것인가? 한편 박 전 대통령 자신도 정규재 TV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대통령이 아니면, 또 여성이 아니면 그런 비하를 받을 이유가 없겠죠”라고 호소하였다. 과연 대통령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촛불 시민들이 더 문제시 했던 것인가?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고려해 달라”는 유영하 변호사의 시각은 또 어떠한가? 박 전 대통령이 공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을, `여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형국이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은 여성 리더로서 소외된 여성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들려준 적이 없다. 여성 정치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젠더문제에 책임 있는 역할을 보여준 기억이 거의 없다. 국회의원 시절에 대표 발의한 법안만 보더라도 `여성`과 관련된 것은 한 건도 없었다. 오히려 2013년 청와대 기자단 송년회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했던 표현처럼, 박 전대통령은 “차밍하고 디그니티 있고 엘레강스하다”는 `여성성`에 기반한 공주이자 여왕으로 군림하였다.

박근혜가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대통령이 되는데 결정적이었던 요인은 박정희와 육영수에 대한 신화와 향수에 기반한 이미지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슬로건인 “준비된 여성 대통령”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동원된 전략적 수사였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지적처럼 “많은 여성 정치 지도자들이 그녀의 삶에 관계된 남자들 때문에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라간다. 그 자체가 가부장제의 문제”였음을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위해 무엇을 `준비`했고, `여성` 대통령으로서 여성의 인권과 위상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또한 최고 권력을 가진 `대통령`으로 어떤 긍정적인 리더십을 보여 주었는지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정치는 여전히 남성 지배적인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이 대통령이 되고 정당 대표가 된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을 차지했다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정치 행위의 공과에 대한 평가를 여성이라는 잣대로 바라보는 시선 역시 문제가 많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의 본질이 대통령 중심의 절대 권력구조와 비민주적 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대통령이었고 비선실세가 여성이었다는 것으로 치환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걸림돌이다.

대체로 여성 리더는 토큰(token)의 지위에 있다. 칸터는 여성이 리더가 되는 것을 정책적으로 배려하기 위한 차원에서 구색 맞추기 식의 토큰과 같다고 지적한다.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상징성 때문에 시선을 더 많이 받게 되고 행동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여성 리더가 성역할 고정관념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여성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여성적이다`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언론은 여성 리더의 메시지나 콘텐츠보다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등 외형에 먼저 주목하여 보도하기도 한다.

성 평등한 정치는 민주주의 척도를 가늠하게 한다. 미국 45대 대통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영국 총리인 테레사 메이, 독일의 수상 앙겔라 메르켈처럼 한국정치의 장에서 여성이 최고 권력을 갖는 것에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여성이기에 더 주목받고 여성이기에 더 문제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은 곤란하다. 여성을 확대 혹은 축소해서 바라보는 성별에 따른 판단은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과 같은 차별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꿈꾸는 여성 정치인들이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여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정말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