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호 승
어둠과 어둠 속으로만 떠돌던 나를
그래도 절뚝거리며 따라와주어서 고맙다
나 대신 차에 치여 다리를 다친 일과
나 대신 군홧발에 짓이겨진 일은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다
가정법원의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너 혼자 울면서 재판 받게 한 일 또한 미안하지만
이제 등에 진 짐은 다 버리고
신발도 지갑마저도 다 던져버리고
가볍게 길을 떠나라
그동안 너는 밥값도 내지 않고 내 밥을 먹었으나
이제 와서 내가 밥값은 받아서 무엇하겠니
굳이 눈물 흘릴 필요는 없다
뒤돌아서서 손 흔들지 말고
가라
인간이 사는 곳보다
새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어린 나뭇가지에서 어린 나뭇가지로 날아다니는
한 마리 새의 그림자가 돼라
한 마리 새의 그림자가 돼라
시인은 시에서 자신의 그림자에게 말하는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그리 녹록지 않았고, 사랑하는 일 또한 그런 것이어서 참으로 힘들고 눈물 속의 시간들이었음을 고백하며 이제 훌훌히 새들의 세상으로 비상하고 싶어하는 심정이 나타나 있다. 끊임없이 반성하고 자정(自淨)하는 마음가짐으로 진정한 자신과 자기가 바라는 사랑에 이른다는 시인의 인식이 잘 나타나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