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영주 `한국선비문화축제`

▲ 순흥 초군청 줄다리기가 펼쳐지고 있다.

영주시는 선현들의 올곧은 정신과 문화를 계승·발전시켜 현대인에게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 위해 한국선비문화축제를 매년 이어가고 있다.

한국선비문화축제는 유교문화의 본향인 영주시의 역사적 배경을 재조명하고, 한국 정신문화의 중심인 선비정신과 선비문화 등 다양한 생활상을 되돌아 보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우리의 전통성과 앞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부분에 초점을 두고 시행되고 있다.

올해 5월 26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되는 `2017 한국선비문화축제`는 우리나라 최초 사액서원이며 한국 선비정신의 중심적 역할을 이어오고 있는 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과 선비촌 일대에서 영주시와 (재)영주문화관광재단이 주관·주최해 열린다.

영주시의 한국선비문화축제는 올해가 10회째로 이번 축제의 주제는 선비의 사랑이다.


5월26~29일 영주문화관광재단 주최
영주시 소수서원·선비촌 일대 개최
`선비의 사랑` 주제 다양한 프로그램

□ 영주시의 선비문화 계승·발전을 위한 노력

영주시는 한국의 대표적 정신문화인 선비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지고 있는 영주시의 선비문화축제는 지역 활성화라는 목표 아래 지역의 창조적 개발 및 정체성 확립, 지역주민의 공동체 의식함양에 취지를 두고 매해 이어지고 있다. 또한 현대사회의 다변화한 구조 속에서 문화적·정신적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데도 그 뜻을 두고 있다.

영주 한국선비문화축제는 소수서원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을 배경으로 유교문화의 본향에서 선비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문화적 경쟁력을 갖춘 축제인 동시에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장으로도 역할하고 있다.

영주시는 유·불문화가 공존하는 곳으로 천년고찰 부석사와 소수서원, 자연의 정취가 아름다운 무섬 전통마을, 선비의 숨결이 남아 있는 선비촌, 단종 복위에 연루됐던 금성대군 위리안치지 등이 자리한 고장이기도 하다.

 

▲ 마당놀이 `덴동어미` 공연.
▲ 마당놀이 `덴동어미` 공연.

□ `2017 한국선비문화축제`의 주요 프로그램

이번 `2017 한국선비문화축제`에선 고유제, 창작오페라 선비 갈라쇼, 사인사색 인문학콘서트, `선비의 사랑` 개막공연, 멀티미디어쇼, 선비의 사랑 개그 퍼포먼스, 선비문화 골든벨, 아동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기부행사, 선비체조 배우기, 순흥 초군청 줄다리기, 소수서원 Est.1543 기념플래시몹, 안향 선생 전국휘호대회, 선비밥상 향토음식 경연대회, 선비 비정상회담, 실경뮤지컬 `정도전`, 경북도립예술단 한국무용공연, 한국선비문화축제 10주년 기념음악회, 마당놀이 `덴동어미`, 선비 어린이 인형극, 버스킹 등 다채로운 행사를 만날 수 있다. 영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이런 행사를 통해 전통적 선비정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 한국의 대표적 선비 배출 요람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국학의 제도를 본떠 선현을 제사 지내고 유생들을 교육한 장소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유학자인 안향의 사묘를 설립한 후 1543년 유생 교육을 위한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그 시초다.

이후 경상도관찰사 안현이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고 운영방책을 보완했다. 이 시기의 서원은 사묘의 부속적인 존재로 과거공부 위주의 학교로 인식되고 있었다.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은 교학을 진흥하고, 사풍을 바로잡기 위해 서원 보급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사액과 국가의 지원을 요청해 1550년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았다.

소수서원은 1868년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존속했다. 소수서원은 사적 제55호로 지정되고, 보물 제59호 숙수사지당간지주, 국보 제111호 회헌영정 등과 141종 563책의 장서가 남아 전해지고 있다.

 

▲ 한국선비문화축제 고유제가 열리고 있다.
▲ 한국선비문화축제 고유제가 열리고 있다.

□ 영주가 배출한 대표적 선비는…

앞서 말한 것처럼 영주는 수많은 선비를 배출한 학문의 고장이다. 아래 영주를 대표하는 선비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정도전(1342~1398):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이성계를 추대해 조선 개국의 중심에 있었던 정도전은 대표적 개혁사상가로 고려 말 국가적인 시련과 사회적인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대책으로 양인(良人)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의 건설과 자주국가의 확립을 목표로 했다. 그는 한양 천도를 주도하고, 1395년 정총 등과 함께 고려국사를 수찬하고 경제문감을 저술해 임금에게 올리고 새 궁궐의 이름을 경북궁이라 짓고, 궁내 강녕전, 연생전, 경성전, 사정전, 근정전, 정문, 융문루, 융무루 등의 이름 짓기도 했다.

△안축(1287~1348): 고려 후기의 문신이며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 시호는 문정(文貞), 할아버지는 희서, 아버지는 석(碩)이며 어머니는 안성기(安成器)의 딸이다. 경기체가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별곡(竹溪別曲)의 작가로, 죽계(지금의 풍기)에서 세력 기반을 다지고 중앙에 진출한 신흥사대부의 한 사람이다. 1347년에 흥녕군(興寧君)에 봉해지고, 순흥 소수서원에 제향(祭享)됐다.

△안보(1302~1357):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원지(員之). 시호는 문경(文敬), 아버지는 석(碩)이며, 형은 첨의찬성사 축(軸)이다. 1320년(충숙왕 7) 문과에 급제, 광주사록(廣州司錄)에 임명되고, 1344년에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합격해 요양행중서성조마 겸 승발가각고로 있다가 노모(老母)를 위해 귀국해 양광도 안렴사를 거쳐 이듬해 교주도 안렴사를 역임했다. 형인 축과 함께 안향(安珦)을 제향한 소수서원에 배향(配享)됐다.

△박승임(1517~1586):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보(重甫), 호는 소고(嘯皐)다. 퇴계 이황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1540년 식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승문원, 예문관, 홍문관 등에서 청환직을 거쳤으며, 충언을 담은 1만 여 상소를 올리는 등 정책 결정에 적극 참여했던 인물이다. 박승임의 성리학적 견해는 이황의 학성을 따라서 주리론적 경향이 강했다. 저서로는 `성리유선` `공문심법유취` `강목심법` `소고문집` 등이 있고 영주시 구산정사에 제향됐다.

 

▲ `어린이 선비 골든벨`에 참석한 학생들.
▲ `어린이 선비 골든벨`에 참석한 학생들.

△김담(1416~1464): 조선 전기의 천문학자로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거원(巨源), 호는 무송헌(撫松軒),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1435년 정시에 병과로 급제하고 1439년에 집현전 박사가 됐다. 이순지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김담은 세종 때 천문과 역법사업에 크게 공헌했다. 김담은 정인지, 정초, 정흠지, 이순지 등과 함께 `칠정산내편` `칠정산내편정묘년교식가령` `칠정산외편` `칠정산외편정묘년교식가령` `대통력일통궤` `태양통궤` `태음통궤` `오성통궤` `사여전도통` `중수대명력` `경오원력` `선덕십년월오성릉범` 등 천문과 역법에 관한 많은 책들을 번역하고 펴냈다.

△황준량(1517~1563):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중거(仲擧), 호는 금계(錦溪)로 현 영주시 풍기읍에서 태어났다. 이황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1540년 식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557년 단양군수, 1560년 성주목사로 4년간 재임하다 1563년 병으로 낙향해 예천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황은 이를 애석하게 여긴 나머지 제문을 두 번이나 쓰고 특별히 행장도 직접 썼다. 문집으로 `금계집`이 있으며 풍기의 욱양서원과 신령의 백학서원에 제향됐다.

/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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