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호<br /><br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지난주 오랜만에 동경의 외곽 메구루구에 있는 동경공대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HEPA(Higher Education Planning in Asia)라고 하는 아시아 고등교육 기획 모임이 있었다. 5년 전 홍콩과기대(HKUST)와 함께 필자도 준비위원의 일원으로 기획했던 모임이었고 아시아 각국 기획처 책임자, 팀장급 실무자들의 모임이다. 그런데 이날 애써 찾아간 동경공대 캠퍼스를 들어서자마자 눈에 확 들어오는 간판이 있었다.

`노벨상 수상 기념관!`

작년 동경공대의 오스미 요시노리 명예교수는 세포가 내부의 불필요한 단백질 등을 스스로 분해하고 재활용하는 메커니즘인 자가포식(自家捕食, autophagy) 현상을 밝혀낸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토파지, 즉 자가포식을 규명함으로써 암을 치료할 방법개선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고 한다.

오스미 요시노리를 기념하는 사진과 업적, 메달들을 전시한 전시관을 먼저 둘러보면서 부러움을 느꼈다. 그 기념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번 노벨상은 동경공대의 두 번째 노벨상이라고 한다. 이미 2000년 노벨 화학상에 시라카와 히테키 교수를 배출하고 이번이 두 번째 수상이라고 하니 필자의 부러움은 더 할 수밖에 없었다.

동경공대는 일본 국립대학으로서 아시아의 MIT라고 불릴 정도로 이공학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연구수준을 자랑한다. 공업입국을 모색하던 메이지 정부가 전문기술소양을 갖춘 직공장, 공업교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한 학제상 일본 최초 공업교육기관 동경직공학교를 모체로 한다. 현재는 전통적인 이공학뿐만 아니라 정보계, 바이오계, 사회·경영계를 망라하는 이공계종합대학으로 발전했다.

이날 행사 중 총장과 부총장을 만나 함께 이야기하면서 이들의 자부심과 프라이드가 남달리 느껴졌다. 당당함이 느껴졌다. 키가 훨씬 더 큰 필자지만 작게 느껴졌다. 행사가 끝난 후 부총장실을 방문해 환담하면서 결코 가볍지 않은 충격이 다가왔다. 그들의 검소함이다. 본부 건물은 화려하지 않은 옛 건물 그대로였고, 부총장실도 소박한 모습이었다.

시종 일어서서 대화하는 모습도 분주하면서도 나태하지 않은 본부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사실 동경공대의 일본식 이름은 동경공업대학이다. 전신은 메이지시대인 1881년 설립된 동경직공학교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공업대학이라고 하면 이론적 연구와는 먼 대학으로 느껴지지만 일본에서는 당당히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동경공대는 얼마전 울산대에서 열린 타임즈의 아시아 서밋에서 발표된 랭킹에서 아시아 톱10에 들지 못했다. 한국의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등이 톱10에 들어간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단순히 연구력과 명성만으로 측정하는 현재의 랭킹 시스템으로는 동경공대, 아니 노벨상 과학상을 여럿 배출한 일본의 소위 장인정신을 측정하긴 쉽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돌파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최근 대구에 있는 디지스트는 연구와 학사가 공존하는 강점을 기반으로 연구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이슈를 발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학연 협력연구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국제선도기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그랜드 챌린지 포럼`(Grand Challenge Forum)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포럼을 통해 발굴된 세계적 빅이슈를 대상으로 한국의 연구자와 해외 연구자가 협력연구를 진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장인정신이 부족한 우리에게 빅이슈를 공동으로 발굴하는 국제적 시너지 효과를 통해 창의적 연구를 개발하겠다는 새로운 발상이다.

포스텍의 대강당 앞에는 빈 좌대가 놓여 있다. 거기에 노벨상 수상자의 얼굴을 얹어놓기를 기다린 게 어언 30년이 지났다.

노벨상은 기다린다고 되는 건 아니다. 한 연구에 미치도록 몰두하는 그런 연구풍토가 자리잡지 않는 한 50년을 기다린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다. 우리의 연구 풍토는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