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조 신부·현풍본당
“사랑하지 않고는 안다고 말하지 말라.”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유고집 `거룩한 경청` 127쪽에 나오는 말씀을 한 줄로 요약해보았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의 허물까지도 덮어집니다. 그가 가진 허물을 개의치 않게 됩니다. 일흔일곱 번의 용서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가운데 왜 갈등, 분열, 다툼, 증오, 미움, 공격, 음해, 모함이 있을까요? 사랑이,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고 말하기 전에 그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그분의 이 말씀으로 이제 결백하고 고결한 사람, 죄 없는 사람, 격정과 육욕이 없고 거룩하고 완벽하고 선한 사람, 의롭고 신심 깊은 사람,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까지 모두 하느님 법정에 불려나온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거룩하고 고결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무자비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차마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슬그머니 돌을 내려놓습니다. 그분이 계속해서 땅바닥에 글을 쓰고 계시는 동안 모두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분은 돌을 든 사람들에게 그 돌을 던지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만들어주셨습니다. 현명한 방법을 쓰셨습니다. 사람들은 차츰 알아차렸습니다. `암, 나는 거룩하지! 그런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안되고말고!` 라며 발길을 돌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겠다.”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이미 어느 정도 단죄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상쾌한 아침 햇살이 눈부신 가운데 이토록 밝은 날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계시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전 한 쪽이 웅성거리더니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여인이 돌을 든 남자들 손에 무지막지하게 끌려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부끄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채 수치심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도 평화가 깨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가련한 여인을 보는 그분의 눈길에 연민이 가득합니다. 그 여인을 예수님께서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분이 그 가녀린 얼굴과 배, 혹은 가슴과 등을 겨냥해서 무자비하게 돌을 던지는 것을 허락하실 수 있었을까요? 우리도 차마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도 없이 단 둘만 남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어떤 것에도 메이지 않고 기쁘고 자유롭게 갈 길을 가게 하십니다. 그날 아침 너무나 밝은 햇살에 차마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 없었던 한 여인의 그 “많은 죄를 용서받은”(루카 7,47) 기쁨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집니다.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기에, 우리가 얼마나 죄에 잘 넘어가는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더 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음을 요한 8,1-11. 복음의 여인을 통해 우리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