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지난해 치러진 미국대통령선거 결과는 복잡계(Complex System) 연구가 표방하는 전제의 타당성을 증명한 이변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여론조사 과학의 완벽한 실패다. 선거 당일까지도 뉴욕타임스의 85퍼센트 확률을 비롯해 대부분의 언론사와 여론조사 기관은 9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힐러리의 당선을 예측했었다. 전통적인 과학적 여론조사기법들이 모두 헛것이라는 사실이 또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은 미국대선 훨씬 전인 지난해 4월 한국의 20대 총선과 6월에 진행된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찬반 국민투표에서 이미 입증됐었다. `인과관계에 대한 종래의 견해가 하나의 원인에 대응하는 하나의 결과라는 단순한 관계의 설정이기 때문에 맞지 않는다`는 복잡계 학자들의 비판이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종래의 선형(線型)시스템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과학이 신뢰성을 크게 잃고 있는 셈이다.

우리 정치권은 바야흐로 5월 9일로 예정된 장미대선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는 기관차처럼 뜨겁다. 진보정당 위주로 펼쳐지는 선거판의 기울기는 요지부동이다. 4월초 각 정당의 후보들이 확정되면 어찌 변할지 모르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정당은 여전히 의미 있는 수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공천경쟁에서 드러나는, 상대방의 말꼬리를 물어뜯고 약점을 할퀴는 방식의 선거풍토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대통령선거는 시대정신이 반영된 이슈를 토대로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만드는 후보가 승리한다. 모진 단어를 동원해 실정(失政)을 비판하는 선동에 휘둘리는 `회고적 투표`가 아니라 누가 국가를 잘 이끌어 갈 것인가를 기준으로 `전향적 투표` 행태가 나타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결국은 심판론을 앞세운 캠페인보다는 미래에 대한 신실한 청사진으로 유권자들로부터 미더움을 높이는 전략이 주효하다는 이야기다.

가파르게 기울어진 운동장 높은 곳 진보진영 후보들의 선거캠페인에서 `적폐청산` 구호는 약방의 감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모든 후보들이 이들의 다짐에 대해 `좌파정권의 적폐`를 들먹거려 역공하거나, `정체성 부정`으로 몰아가는 형식으로 연일 성토하고 있다. 더민주당 안희정 후보는 `적폐청산` 구호에 대해 “미움과 분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우려를 거듭 내놓았다.

걱정했던 대로, 문재인 후보가 `적폐청산 특별조사위원회` 설치를 입줄에 올렸다. 일단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더 파헤치겠다는 의지표명이었음에도 위험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권력보다 `독한 술`은 없다. 처음엔 사람이 권력을 쥐지만 그 다음엔 권력이 사람을 삼킨다. `적폐청산` 선동이 광장정치에 편승해 무소불위의 광풍을 일으키는 날이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66년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주도된 극좌 사회주의 광장정치였던 문화대혁명은 10년간 무려 300만명을 숙청했고, 경제피폐와 부정부패를 만연시켰다. 중국공산당마저 뒤늦게 `극좌적 오류`였다고 공식 평가했다. 전두환 군부가 국민적 환심을 사는 동시에 공포분위기 조성을 위해 단행한 삼청교육대는 449명 사망(후유증 사망자 포함)을 비롯해 정신장애 등 상해자를 2천678명이나 발생시킨 부끄러운 인권침해 역사였다.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유례없이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불가측성을 바탕으로 하는 복잡계가 작동되고 있다면, 개표결과가 발표되기 직전까지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레이스가 될 것이다. 유권자들 스스로도 지금 당장 자신이 어떤 인물을 지지하고 있는지 모르는 이상한 선거판이 흘러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최저 투표율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측마저 나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번 선거 역시 `회고적 투표`보다는 `전향적 투표`가 승패를 가를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