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악회를 따라 경상북도, 충청북도, 전라북도가 만나는 삼도봉을 다녀왔다. 먼 산은 아직 눈이 자욱히 쌓여 있었으나 산 아래, 버들강아지는 피어올랐다. 여릿한 벌이 홀로 그 사이를 기어다녔다. 자세히 보니 버들강아지는 작은 꽃들로 이루어진 꽃방망이 모양이다. 문득 벌이 날아오른다. 덜 봄에서 더 봄으로? 봄은 그야말로 봄이어서 보면 볼수록 보이는 것 투성이다.
▲ 산악회를 따라 경상북도, 충청북도, 전라북도가 만나는 삼도봉을 다녀왔다. 먼 산은 아직 눈이 자욱히 쌓여 있었으나 산 아래, 버들강아지는 피어올랐다. 여릿한 벌이 홀로 그 사이를 기어다녔다. 자세히 보니 버들강아지는 작은 꽃들로 이루어진 꽃방망이 모양이다. 문득 벌이 날아오른다. 덜 봄에서 더 봄으로? 봄은 그야말로 봄이어서 보면 볼수록 보이는 것 투성이다.

◆해인리, 뒹구는 봄

참 좋은 산행이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은 산악회를 따라나섰다. 마침 백두대간 종주를 전문으로 하는 송백산악회다. 무주 무풍면 덕산재에서 출발해 백수리산을 지나 충청북도, 전라북도, 경상북도가 만나는 삼도봉을 찍고 김천의 해인리로 내려올 것이다. 준비를 하며 소풍가는 아이처럼 들떠 잠을 설쳤다.

버스로 3시간 이상을 달려 출발지에 도착했다. 막상 따라오긴 했으나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해인리 주차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처럼 산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냉이도 뜯고 쑥도 뜯었다. 산악회 회장님도 이곳에 남아 천막 칠 자리에 물청소를 했다. 나도 가만있긴 멋쩍어 근처 마을회관에서 빗자루며 바가지를 빌려왔다. 그러다보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직도 시간이 한참 남았다.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둘러봤다. 양지바른 곳에는 새끼손톱만한 하늘색 꽃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봄까치꽃, 소식을 전하는 까치처럼 봄이 오는 것을 누구보다 빨리 알린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일까? 꽃 옆에 누웠다. 봄볕에 그을리면 임도 못 알아본다는데, 그런 말쯤 무시한다. 봄볕은 자글자글하다. 나는 봄날, 풀밭을 뒹구는 곰처럼 뒹굴 거린다.

나는 어느새 개울을 따라 산을 오르고 있다. 어디서 난 물인지 개울은 제법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나를 발견한 나비들이 저 멀리서도 날아 흩어진다. 저마다 갯버들이 따로 또 같이 늘어서 있다. 아직 여릿여릿한 벌 한 마리가 버들강아지 위를 기어다닌다. 자세히 보니 버들강아지는 작은 꽃들로 촘촘히 이루어져 있다. 꽃방망이쯤 되려나, 문득 벌은 아래쪽 꽃봉오리에서 더 위쪽 꽃봉오리로 날아오른다. 어디로? 덜 봄에서 더 봄으로!

조금 걸은 것 같은데 벌써 정상이다. 해인리에서 삼도봉까지 3.2km. 정상 어귀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덮여 있다. 멀리 이름 모를 산은 눈으로 덮여 있다. 봄은 참으로 `봄`이어서 볼수록 보이는 것 투성이다.

◆`진상`의 전말

함께 한 산악회 사람들이 이런 내 글을 본다면, “개뿔이라 캐라! 어데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따라와서 온갖 진상은 다부려놓고, 뭐라꼬?”라고 말했을 것이다. 앞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산행`을 못했다고 했는데, 사실 나는 중도에 포기했으며, 산행 내내 온갖 밉상을 다 부렸다. 이제부터 진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야겠다.

버스가 덕산재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산행이 시작되었다. 턱없이 두꺼운 옷을 챙긴 덕분에 옷을 집어넣는다, 무릎보호대를 한다, 등산화 끈을 조인다, 혼자 분주하다. 사람들은 내리기 전에 이미 준비를 마친 모양인지, 선두가 출발한다. 후미 대장님의 시선이 곱지 않다. 어쩌라구요, 내리면 바로 출발한다는 말도 없었잖아요. 난 준비운동이라도 할 줄 알았죠. 나는 자꾸 변명거리를 생각하며 허겁지겁 따라나선다.

아직 제대로 낫지 않은 감기가 이럴땐 더 극성이다. 다친 무릎은 자꾸 시큰거리고, 벌써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왜 이렇게 빨리 걸으세요, 천천히 가요, 라고 말은 못하고 앞서가는 사람만 무작정 따라가고 있다. 갑자기 이 길이 아닌 것 같단다. 정말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없다.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출발도 늦었는데, 선두와 간격은 더 벌어졌다.

왠지 내 잘못인 것 같다. 대장님, 이건 제 잘못이 아녜요. 아시죠, 예? 뒤따라오던 후미 대장님이 볼 일을 보는 모양이다. 바로 앞서 가던 두 명도 잠깐 멈췄다. 이 때다 잽싸게 치고 나갔다. 5분도 못 가 따라잡힌다. 뭐가 이렇게 빨라, 능선을 타고 내려갔다 오르길 반복하고 있다.

산 아래에서는 봄이었는데, 산 능선은 아직 겨울이다. 왜 그동안 봄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봄은 산꼭대기로 내몰린 겨울을 향해 치고 올라온다. 산의 북면에는 아직 눈이 드문드문 남아 있고, 완전히 풀리지 않은 땅은 겉만 살짝 녹아 있다.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

나를 앞질러 간 분들은 어디까지 갔나, 후미대장님은 또 어디? 뒤를 돌아보는 순간, 어이쿠! 쭉 미끄러진다.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뒤로 자빠진다. 일어나니 목이 뻣뻣하다. 어느새 따라온 후미대장님이 넘어지는 것부터 쭉 지켜본 모양이다. 어디 보자며 목을 주무른다. 이러다 괜찮겠지, 했더니 대장님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며, 탈출로를 따라 내려가자고 한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울고 싶다. 그런데 정말 `민폐`는 해인리에 도착해서다. 청소나 하고, 목에 파스나 붙이고 쉬었으면 되었을 텐데, 뭐, 봄까치꽃? 사실 그 꽃은 큰개불알풀이다. 이름이 하도 거시기해서 최근에 봄까치꽃이라는 이름을 붙였단다. 그 꽃이나따나 보고 있을 게지 무슨 귀신에 씌였는지, 기어이 산을 기어올랐다.

아무 힘도 안 들이고 오른 것처럼 말했지만, 순전히 뻥이다. 산이 얼마나 가파른지 200m 오르는데 20분도 더 걸렸다. 총 시간이 6시간 걸린다는 말이었는데, 나는 6시에 출발한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올라가다가 산악회 일행을 만나면 돌아올 요량이었다. 그런데 웬 걸, 우리 일행은 지름길로 빠져 이미 하산한 모양이었다. 일이 별나게 꼬인다.

사람들은 4시에 돌아와 밥을 먹고 막걸리를 마시고 노는데, 4시 50분! 나는 아직도 정상 어귀에서 곧 일행을 만나겠지 하며 미적거리고 있다. 회장님이 왜 아직 안 내려오냐며 전화를 했다. 정말 너무해요, 조금만 일찍 전화를 하시지, 3km를 뛰듯이 내려왔다.

 

▲ 공강일 서울대 강사
▲ 공강일 서울대 강사

나 때문에 한 시간은 늦은 모양이다. 비난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모두들 고생했다며 외려 막걸리를 부어 주신다. 급하게 마셨는지 속이 좋지 않다. 제발 차 좀 세워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차마 그 말은 못하겠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진상은 진상이다. 다음 산행에 같이 갈 사람을 조사하고 있다. 나는 일단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을 한다. 꼭 따라가야지, 흠 두고 봐라, 꼭 따라가야지, 다짐을 한다.

한편 진상 부리다, 진상 떨다, 라는 말을 곧잘 쓰지만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진상`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못난 사람이나 행동을 일컫는 말로 쓰는데, `진짜 밉상이다`의 준말이라는 설도 있다. 더 알고 싶으면, 국립국어원의 `온라인가나다`에서 진상을 검색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