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모로코에서 벽화를 그리고 싶다던 일본인 아카시낯선 길 위에서
불가리아 ②
홍성식기자  |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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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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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 속에 등장할 것처럼 예쁜 `성 니콜라스 정교회`.
 

불가리아는 기자가 여행한 첫 번째 유럽국가다.

보통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의 서유럽을 즐겨 찾는 것과 달리 조금은 특별한 선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불가리아로 입국하기 하루 전 조그만 노트에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그간 살아온 아시아가 아닌 낯선 대륙을 향한다는 일종의 설렘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가리아 소피아로 가는 열차 출발시간이 1시간 50분쯤 남았다.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빨라서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거쳐 터키에 도착한지도 벌써 1개월이 넘어서고 있다.

막상 떠나려고 마음먹고 보니 매일 보던 이스탄불의 석양이 유난히 슬프고 아름다워 보인다.

이제 배낭을 정리해 숙소와 15분 거리인 시르케지(Sirkeci)역에서 기차를 타면 내일 낮 불가리아에 닿는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유럽이라는 다른 공간, 다른 인종, 다른 거리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생경함 때문일까? 기분이 묘하다. 이런 감정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마음으론 기차를 타고 프랑스까지 쭉 올라가볼 생각인데, 그게 또 어떻게 바뀌게 될지….`

 

  ▲ 소피아 거리. 오른편 건물이 불가리아 국회의사당이다.  
▲ 소피아 거리. 오른편 건물이 불가리아 국회의사당이다.

▲1980년대 한국의 시골풍경을 떠올리다

14시간이면 도착한다던 기차는 3~4시간을 연착해 오후 늦게서야 기자를 불가리아 소피아역에 내려놓았다.

터키 이스탄불을 어젯밤 10시에 출발했으니 적지 않은 시간을 기차에 머물렀다. 그러나, 편안한 침대칸을 예약했고, 같은 칸에 머문 유쾌한 핀란드 아저씨 덕택에 여행은 지루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기차 창밖으로 내다본 불가리아의 풍경은 한국의 1970년대 혹은, 1980년대 시골과 닮아있었다.

붉은색 기와를 소재로 만든 야트막한 집들과 골목에서 뛰노는 아이들, 넓이를 가늠키 힘든 감자밭과 옥수수밭, 거기에 낡은 트랙터로 농사짓는 사람들까지.

수도인 소피아도 규모로만 보자면 한국의 소읍(小邑) 수준이었다. 낡은 트램(노면전차)이 덜컹거리며 오가고, 사람들은 동구권에서 오래 살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소피아 근교엔 소비에트연방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공장이 창문이 깨지고 벽이 허물어진 채 방치돼 있었다.

불가리아 사람들은 이방인을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길로 그저 묵묵히 바라봤고, 아이들은 동양인을 신기해하며 힐끗거릴 뿐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정보를 가지고 `호스텔모스텔`이란 저렴한 숙소를 찾아갔다.

 

  ▲ 무섭다기보다는 귀여워 보이는 소피아의 사자 동상.  
▲ 무섭다기보다는 귀여워 보이는 소피아의 사자 동상.

머물고 있는 이들 대부분이 유럽인으로 추정되는 백인이고, 동양인으로 보이는 건 기자를 포함해 3~4명에 불과했다.

일본 사내 하나, 중국계 미국인 여자 한 명과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때 만난 서른두 살 일본인 아카시는 정말이지 독특하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아카시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자.

도착하자마자 허기가 밀려왔다. 다행히 호스텔모스텔 근처에도 조그만 식당이 적지 않았다.

눈에 띄는 식당 중 한 곳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갓 구운 빵과 오이냉국 비슷한 차가운 수프, 포크커틀릿처럼 생긴 고기튀김을 먹었는데 다 맛있었다.

불가리아 이전 여행지였던 터키와 이란에선 국 비슷하게 생긴걸 구경도 못했는데….

냉국에서 요구르트 맛이 나긴했지만 오랜만에 국물을 맛보니 피곤함이 사라지고 기분까지 좋아졌다.

기자 또한 “국과 밥이 최고”라고 말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모양이다.

머물 곳으로 정한 호스텔모스텔도 마음에 들었다.

하루에 1만원 가량인 숙박비에 비해 공동침실과 샤워실 등의 시설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간단하게나마 아침과 저녁까지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어 여행경비를 아낄 수 있었다.

시원한 해장국만은 못하지만 공짜로 먹는 것이니 치즈와 홍차, 소시지와 염장한 올리브로 차린 아침식사도 나쁘지 않았다.

저녁에는 파스타와 맥주까지 넉넉하게 먹을 수 있으니 젊은 배낭여행자들이 모여드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 소피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인 `성 게오르기 교회`.  
▲ 소피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인 `성 게오르기 교회`.

▲끊임없이 지구를 떠돌고 싶은 사람을 만나다

앞서 말한 일본인 아카시를 다시 만난 건 소피아에 도착한 둘째 날 점심 무렵이었다.

시내로 산책 나가보니 중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었다. 한국에서 먹던 탕수육과 짜장면 생각이 나서 얼른 들어갔다.

거기에 아카시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앉아있었다.

둘 다 혼자였기에 “합석하는 게 어떨까?”라고 먼저 제의했다.

흔쾌히 “그럽시다”라고 응수하는 아카시.

푸른 눈동자의 백인 주방장이 요리한 볶음밥과 중국식으로 양념한 돼지고기 튀김을 함께 먹었다. 곁들인 불가리아 맥주의 풍미가 좋았다.

아카시는 18개월째 혼자서 아시아와 유럽을 여행 중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아등바등 다녀 졸업해봐야 샐러리맨인데 그렇게 인생을 보내는 건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학교를 그만뒀다고 했다.

 

  ▲ 슈퍼마켓에서 1천원 정도면 살 수 있는 불가리아 빵.  
▲ 슈퍼마켓에서 1천원 정도면 살 수 있는 불가리아 빵.

그 이후에는 잠시 일을 해서 돈이 좀 모이면 여행을 다니고, 돈이 떨어지면 일본으로 돌아가 다시 일자리를 찾는 과정을 반복해왔다며 깔깔거렸다.

그 웃음에 거짓이 없는 듯해 보기가 좋았다. 한없는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것 같아 부럽기도 했다.

죽이 맞은 우리는 낮술에 취해 한 나라의 수도답지 않게 고적하고 조용한 소피아를 함께 돌아다녔다.

성 니콜라스 정교회를 지나 불가리아 국회의사당 앞에서 담배를 나눠 피웠고, 1천6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성 게오르기 교회에서는 인간의 유한함과 역사의 무한함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튿날 트램을 타고 교외로 나갔을 때는 조용한 공원에 앉아 서로의 첫사랑 이야기까지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에겐 저마다 각기 다른 `여행의 이유`가 있다.

아카시 역시 그랬다. 그가 말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내가 태어난 별 지구를 끊임없이 떠돌고 싶다”고.

아름다운 지중해가 펼쳐진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벽화를 그리고 싶다던 아카시의 꿈은 지금쯤 이뤄졌을까? 문득 궁금하다.

불가리아는 요구르트보다 빵이 더 맛있다?

새로운 볼거리가 곳곳에 있는 여행지에서는 누구나 오랜 시간을 걷게 된다.

육체적 에너지를 일상생활에서보다 많이 소모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배도 자주 고프다. 새롭게 만난 나라와 도시에 싸고 맛있는 음식이 흔하다면 그건 여행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는 어떤 음식을 맛보면 좋을까? 아래는 소피아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맛본 불가리아 음식들이다.

◇ 한국과는 달리 짭짤한 요구르트

불가리아 사람들은 요구르트를 키셀로 믈랴코(Kiselo Mlyako)라고 부른다. 이를 한국말로 해석하면 `시큼한 우유`가 된다.

불가리아 요구르트는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유명하다. 자연환경이 유산균을 만드는데 최적화돼 있는 불가리아의 요구르트는 여러 나라에서 영양가 높은 음료로 인식돼 있다.

그러나, `달콤한 요구르트`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라면 짭짤한 맛이 나는 키셀로 믈랴코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기자의 경우엔 채 썬 오이를 요구르트에 듬뿍 넣어 일종의 수프처럼 만든 요리가 좋았다.

◇ 큼직하고 저렴해서 더 맛있는 빵

유럽은 지역마다 생산되는 밀의 품종이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밀을 주재료로 만드는 빵의 맛도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불가리아 사람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낸 빵을 즐긴다.

고급 제과점에서 먹는 비싼 빵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맛있다.

하지만, 젊고 가난한 여행자들이 매번 그런 곳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는 없는 일. 다행히 불가리아는 길거리에서 파는 빵도 맛과 식감이 나쁘지 않았다.

과일잼이나 크림이 든 커다란 불가리아 빵 하나면 허기가 금세 사라진다. 가격까지 싸서 금상첨화다.

◇ 프랑스 와인만큼 향과 맛이 좋은 포도주

불가리아인들은 기원전 6천년 경부터 포도를 먹었다고 전해진다.

자연적으로 자라난 것이건 재배한 것이건 포도를 먹었다면 포도주 또한 만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불가리아 포도주의 역사와 전통은 만만찮다. 유럽 사람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포도주를 좋아하지만, 불가리아 와인도 이에 못지않게 높이 평가한다고 들었다.

소피아의 슈퍼마켓에 들어가면 여러 종류의 불가리아 포도주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1병에 2유로(약 2천500원)짜리 포도주의 향과 맛이라곤 믿기기 않을 정도인 것들이 많다. 주당에겐 큰 즐거움이다.

사진제공/류태규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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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공원에서는 관광객을 위해 그림도 전시·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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