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범 주임 신부·대구 성당본당

방탕한 삶에서 돌아온 작은아들을 용서하며 성대한 잔치로 맞아주시는 아버지, 이 처사를 못마땅해하는 큰아들을 다독이며 용서에로 이끄시는 아버지….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어둠에 빠졌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무엇을 해야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회개하며 용서를 청하는 작은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은 먼저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나서기를 원하십니다.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 18) 회개의 최우선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그분을 찾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순간 하늘을 놓쳐버린 것보다 더 어두운 것은 깊은 죄책감에 빠져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못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어둠이란 결국 사랑(빛)을 믿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그렇다면 형제와의 화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께서 사랑이심을 믿는다면 사랑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려는 마음부터 가져야 용서를 구할 수도, 서로의 소통을 이룰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을 믿는 것이 첫 번째이지만 자아의 진리를 개척하는 지혜를 익히는 것도 중요합니다. 스스로의 가치관을 살펴 더 높은 이상을 이룬다는 것인데, `더 높은 이상`은 하늘을 향한 흠숭에 맞닿는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빛의 결탁으로 `그의 행복이 나의 행복입니다.` 라는 빛의 의지를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가득하신 손길로 함께 파스카를 이루는 행운을 얻게 될 것이며, 또한 서로가 보편되기를 원하신 주님의 뜻에 맞게 하나 되는 것이요 삼위일체적 실천이려니 용서와 사랑은 무거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늘은 정녕 설화(說話)가 아니라 실체적 운명, 실체적 사랑입니다.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이 관념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바로 지금 여기 실체적 삶 안에서 하늘에 맞닿아 `주님은 정녕 사랑이십니다.`라는 진실한 고백이 되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느님 사랑 안에서 파스카의 주인공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