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헌재)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으로 직격탄을 맞은 대구·경북(TK) 정치권이 일대 혼돈에 빠졌다. `친박 본산`이라는 비난 속에 정계개편 바람이 불면서 새로운 정치구도 형성의 핵심역할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역할은 지역민들의 맹목적인 지지에 둥둥 떠다니면서 국정과 유력정치인을 나락에 빠트린 허물에 대한 치열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건이 발생했고, 조기 대선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급류가 형성되고 있는 시점에 TK지역의 정치지형 변경은 불가피한 현실이 됐다. 그러나 헌재 판결에 대한 `승복` 문제를 놓고 소위 친박·진박 핵심들의 처신이 요지부동인 것이 심각한 걸림돌이다. 삼성동 사저로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이 여전히 `승복`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마당에 그들의 난처한 입장은 일견 이해가 간다.

하지만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해서 나아가야 할 정치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비가역적인 헌재의 결정을 놓고 여전히 승복 여부에 작위적 논란을 보탠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는 지역민들의 정서를 배려한다면 우리 정치인들이 더 이상 흔들려서는 안 된다. 태풍이 휩쓸고 간 폐허 속에 주저앉아 달아난 회오리바람을 시비하는 일에 시간을 속절없이 낭비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하루빨리 정신을 차리고 앞길을 찾아내야 한다.

무한 애정으로 성공을 뒷받침했던 한 걸출한 정치인의 처절한 몰락을 지켜보는 민심의 기막힌 허탈과 착잡함을 보듬는 일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역할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역사 속에서 한국정치의 심장역할을 해왔던 TK지역의 정치지도자들은 냉정을 되찾아 새로운 정치지평을 펼쳐가야 할 오롯한 사명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된다. 조기대선 국면에서 선거판은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꼴이 됐지만, 절대로 이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임을 믿어야 한다.

지역에서는 유승민·주호영 의원 등으로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받아온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해 강석호·김상훈 의원 등 비박계 의원들의 바른정당 행이 거론되고 있다. 정치권에는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대표가 추구하는 `친박계를 제외한 반문 빅텐트` 흐름이 존재한다. `탄핵 책임론`에서 자유로운 국민의당도 `중도보수`로 진화하고 있는 TK정서에 어색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현 시점에서 TK지역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다. 나라와 지역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펼쳐내야만 한다. 새로운 정치구도 형성의 중심에 서서 대한민국 정치의 핵심이라는 전통적 자존심을 회복해내야 한다. 지금 이렇게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