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성모병원 산부인과 김도균 주임과장의 진료실 이야기(4)

7년 전 일이다. 스무 살 여성 A씨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지역의 한 여성전문병원으로부터 받은 진료의뢰서를 건네며 수술받고 싶다고 말했다.

MRI검사 결과 우측난소의 자궁내막종이었다. 생리 중 하복통, 배변통, 요통, 다리 저림이 있다고 했지만 당시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환자도 별다른 중요한 말을 하지 않았다. 수술은 차질없이 진행됐다.

복강경 수술로 우측난소를 보존하면서 자궁내막종을 제거했다. 수술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자궁 후벽과 직장이 완전히 유착된 것을 발견했다.

순간 갈등이 일었다. `아, 단순한 유착이겠지? 떼어내 봤자 다시 붙을 거야. 자궁내막증 병변이 있어도 난 못해, 괜히 사고 나면 어떡할 거야. 소변줄과 장이 손상되면 치료하기 어려워져. 비뇨기과나 외과에 도움을 요청하면 개복할 가능성이 큰데 그건 안돼!` 중요한 시점에서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고민 끝에 더는 수술을 진행하지 않고 마무리했다. 3일 후 환자는 퇴원했다. 일주일 뒤 내원한 환자는 수술 통증이 없고 상처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아물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자궁과 장 사이에 깊숙이 위치한 심부 자궁내막증이 골반 신경과 허리에서 나온 신경을 당기고 염증을 일으킬 것이란 사실을.

결국 환자에게 고백했다. 수술 후 통증이 심해질 수 있다고. 당분간 재발 방지를 위해 호르몬 약물치료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약물치료를 마친 후 6개월이 지나 환자는 갑자기 생리통, 배변통, 요통, 다리 저림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다. 점점 심해지는 통증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대뜸 “7년 전에 수술 후 통증이 심해질 수 있다는 말이 무엇 때문이었느냐?”라고 물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7년 전, 사실 그땐 국내 대부분 병원에서는 자궁내막증 병변을 수술로 치료하던 시기가 아니었다. 수술 중 심부 자궁내막증 병변과 유착을 알아챘지만, 외면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괴로움이 컸다. 환자들에게 솔직하게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심부 자궁내막증에 매우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후 많은 경험과 새로운 수술법을 배우며 혹독한 과정을 겪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여성암 수술을 배우던 중에 심부 자궁내막증이 여성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 질환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한창 열정을 갖고 연구하며 수술에 집중했지만, 요관과 직장까지 침범한 병변을 제거하는 수술은 한국에서 시행되지 않고 있었다. 반면 해외 몇몇 나라에 전문의사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라질 의사를 찾아 비행기를 타고 40여시간을 날아가기도 했다. 심부 자궁내막증 제거를 위한 안전한 치료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다시 환자 A씨를 마주하게 됐다. 물론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제서야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환자에게 하나씩 풀어냈다. 7년 전 환자 난소에 생리혈이 고여 생긴 자궁내막종은 치료했지만, 정작 통증의 주요 원인인 골반 유착 뒤에 숨어 있던 심부 자궁내막증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젠 어떤 방식으로 치료해야 하는지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었던 말 “다시 수술하자”고 제안했다. 고맙게도 환자와 보호자는 흔쾌히 승낙했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환자를 오랜 시간 괴롭혔던 만성 골반통과 요통, 다리 저림 증세는 수술 다음날 바로 사라졌다. 몇 달 후 생리를 시작해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호르몬제 없이, 생리통 없이, 건강하게 지낸다.

지난 배움의 시간이 힘들었지만, 적어도 비겁한 의사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 어쩌면 평생 살아가면서 A씨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외면하고 싶진 않았다. 골반염, 방광염, 장염이라는 핑계를 들어 약물로 적당히 통증만 조절하는 의사는 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들이 하지 않고 회피하는 심부 자궁내막증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이유, 그 숙제를 준 환자들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