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영 호

외진 변두리 여뀌풀섶에서 물구나무를 서니 다리가랑이 사이로도 너끈하게 구름과 바람이 흘러간다 이윽고 태풍 앤의 뒷설거지로 빗방울까지 흩날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원한데 소리 한 마디 지르지 못하고 나의 혀는 아스팔트처럼 굳어 있다 복개된 도시의 끈끈한 배설물이 멀쩡한 포도덩굴과 나의 틈새를 호비작호비작,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 무너져 매립된다 오진 변두리 여뀌풀섶에서 물구나무를 서니 세상이 바로 보인다

외진 변두리의 매립지에서 시인은 불구의 세상을 보고 있다. 아무리 추하고 엉망이 되어버려 꼴사나운 것도 눈에 보이지 않도록 묻어버리면 그만이라는 인식에 회초리를 대고 있는 것이다. 묻는다고 묻히는 게 아니다. 물구나무 서서 바라보는 세상 속으로 구름과 바람이 너끈하게 흘러가듯이 못나면 못난대로 비록 볼품 없어 팽개쳐진 것이라도, 그런 인생이라도 그 모양 그대로의 존재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시인 정신이 칼날처럼 서 있는 작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