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봉 옥

아프다, 나는 쉬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한때는 자랑이었다

풀섶에서 만난 봉오리를 불러모아

피어봐, 한번 피어봐 하고

아무런 죄도 없이, 상처도 없이 노래를 불렀으니

이제 내가 부른 꽃들

모두 졌다

아프다,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으련다

꽁꽁 얼어붙은

내 몸의 수만 개 이파리들

누가 와서 불러도

죽다가도 살아나는 내 안의 생기가

무섭게 흔들어도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으련다

한 때 사회 변혁을 꿈꾸며 강단진 목소리로 시를 써온 시인이 좌절을 맛보고 쓴 시다. 절망의 심정으로 자기 성찰의 목소리에서 시인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오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꺾이고 밟혀서 져 다시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 오거나, 새로운 힘으로 일어설 수 있다해도 꽃으로 피지 않겠다는 깊은 좌절의 심정을 토로하지만 이것은 반어적 표현이다. 그런 상황이 오면 더 단단히 일어서서 활짝 꽃 피우는 일에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묻어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