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성모병원 산부인과 김도균 주임과장의 진료실 이야기
단순히 산부인과만의 문제 아냐
복막 걷어내는 수술 등
외과·비뇨기과 의술 동원돼야

오래전 일이다. 어느 날 오후, 평소보다 일찍 진료를 마감하려는데 6개월 전 우측 난소의 자궁내막종으로 복강경 수술을 받은 30대 중반 여성이 잔뜩 화가 난 채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대뜸 “도대체 어떻게 수술 했기에 우측 난소에 다시 자궁내막종이 생겼나! 생리통은 더 심해졌다. 제대로 수술한 게 맞나? 당신 돌팔이지? ”라고 물었다.

난감했다. 수술 전 CT사진을 보여주고, 수술 후 조직 검사 결과도 확인했다. 그렇게 소란은 끝났지만, 참으로 자존심 상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라는 생각에 찜찜한 기분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당연히 화가 날 만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병명으로 수술한 다른 환자가 자궁내막종이 재발했다며 항의했기 때문이다.

산부인과 의사라면 누구나 한두 번 겪는 당혹스러운 경험이지만, 환자로서는 진료한 의사를 돌팔이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원인은 자궁내막증의 형성과정에 있다. 자궁 내막 세포들은 나팔관을 통해 난소 표면과 골반 주변의 장기 여러 곳에 흩뿌려지고, 생리로 배출되지 못하면 난소 내에 고여 물풍선처럼 커진다. 이것이 자궁내막종이다.

이같은 과정이 난소의 표면 여러 군데에서 시간 차이를 두고 일어난다고 가정해보자.

난소 안에 5cm, 3.3cm, 3cm, 2cm, 0.3cm의 자궁내막종이 형성되면 영상장비로는 1cm 이상의 크기만 진단된다. 복강경 수술로 4개의 자궁내막종만 제거되고 나머지 0.3cm의 자궁내막종은 난소에 남게 된다. 이것이 직경 5cm의 크기로 자라면 그제서야 환자와 의사 사이에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술 후에도 생리통, 골반통 등의 통증이 나아지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당시 불만을 호소했던 환자는 생리통과 배변통, 골반통, 복통 등이 심하다고 말했다.

사실 복강경수술 당시 자궁후벽과 직장 사이에 공간이 없고, 매우 딱딱하게 붙어 있어 정상적인 형태가 아님을 알아챘다. 분명 유착 아래 자궁내막 세포들이 자라 생리혈을 만들고 염증을 일으킬 것이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처럼 유착이 심할 경우에는 단순히 산부인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착박리 중 장이 손상되면 외과를, 방광이나 뇨관이 손상되면 비뇨기과 의사를 불러 수술적 손상부위를 봉합해야 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러한 손상을 복강경으로 치료할 외과 및 비뇨기과 의사가 많지 않았다.

이후에도 증상이 심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어떻게 하면 통증도 치료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사실 치료방법은 정해져 있었다. 우선 반드시 복강경수술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시야보다 확대된 복강경으로 골반 구석구석 숨어 있는 유착과 자궁내막종을 찾아낼 수 있다.

무엇보다 골반의 뿌려진 병변들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이에 앞서 복막을 걷어내는 수술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복막을 제거하려면 비뇨기과, 외과 장기인 뇨관, 방광, 직장 등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내가 모두 하기로 마음먹었다. 전 세계 유명한 의사들도 찾아다녔다. 비뇨기과와 외과 수술도 부지런히 배웠다. 프랑스, 일본, 브라질, 미국을 다니면서 같은 생각을 가진 의사들도 여럿 만났다. 그렇게 경험을 쌓고 기술을 교류했다.

포기하지 않고 10여년간 열정과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지금은 전국에서 환자들이 치료받기 위해 찾아온다. 작년에는 심부자궁내막증의 수술적 치료를 소개하는 국제 심포지엄도 개최했다.

결국 좋은 치료 결과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재발 가능성에 대해 환자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쉽게 그리고 정성 들여 설명해야 한다. 수술 전에 반드시 현재 진단장비로 알지 못하는 부분을 환자에게 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의사라는 직업은 매우 힘들고 두려운 일이지만 완전한 치료를 위해 도전하고 한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장인(匠人)처럼 말이다.